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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성주제(城造祭) 2016-11-21
성주란 집을 지켜준다는 신령을 말함인데, 집을 새로 짓거나 또는 이사를 하였을 때는 반드시 판수나 무당을 불러 떡시루를 해다놓고 기원한 뒤에 백지(窓戶紙) 속에 동전을 넣고 동그랗게 접 어서 방이나 대청의 대들보에 붙이고 이를 받드는 것이다.
특히 가을 추수가 끝나면 성주 앞에 시루떡을 해다 놓고 기원하는 풍습이 우리들의 생활 속에 오랫동안 젖어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이와같은 풍속도 우리들의 주변에서 사라져간지 이미 오래 된 것 같다.
18. 안택 2016-11-21
안택이란 글자 그대로 집안의 평안함을 기원하는 일종의 제의(祭儀)형식인 것이다.
즉 안택은 주로 판수나 무당이 안택경(安宅經)을 외며 집안에 탈이 없도록 터주신을 비롯하여 성주신 조왕 신 등을 위로 제사하는 것이다.
이 안택은 가을 추수가 끝난 뒤에도 실시하는 경우가 있으나, 대부분 정초에 많이 실시한다.
이는 하루라도 속히 무사함을 기원하는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안택은 새해를 맞이하여 당년의 무사태평을 비는 만큼 정성껏 거행해야 하며, 따라서 부정을 피해야 하므로 외래인의 출입을 통제하였다.
즉 대문밖에 황토 세 무더기를 쌓아놓고 문 위엔 금줄을 쳐서 출입을 막았다.
안 택은 가정주부가 비손으로 실시하는 것과, 판수나 무당을 불러 행하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우리 지방에서는 주로 판수에게 맡겨서 실시한 예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요즈음은 이 같은 민속도 거의 사라진 것 같다.
17. 고수레 2016-11-21
고수레란 판수나 무당이 굿을 할 때 또는 산에나 들에서 음식을 먹을 때, 그리고 남의 집에서 음식이 들어왔을 때, 그대로 먹는 것이 아니라 우선 귀신에게 바친다 하여, 음식을 조금씩 떼어 멀리 던지면서 외치는 소리인데, 지역에 따라 그 명칭이 다름을 볼 수 있다.
즉 고시레, 고시내, 고씨내 등등 여러 가지로 불리워지고 있다.
이같이 여러 가지 명칭이 있듯이, 따라서 그 어원의 유래가 다른데, 그 중 하나의 실례를 들어 보면, 일찍 단군조선(檀君朝鮮) 때에 고시(高矢)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백성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주었으므로, 그 은혜를 보답하는 뜻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고시에 대한 예(禮)로 서 음식을 떼어 던지면서 '고시례'하고 먹는 습관이 생긴 것이라 한다.
또한 조선시대의 호남지방에 고씨라는 후덕한 지주가 있었는데, 소작인의 어려운 실정을 감안 하여 소작료를 감하여 주는 등 후대하였으므로 그 후 농민들이 음식을 먹을 때에는 고씨에 대한 고마은 뜻으로 먼저 음식물을 떼어 '고씨레'하고 던졌다는 것이다.
이같은 설(設)들이 있으나 본래는 전자의 고시례였는데, 오랫동안 내려오면서 '고수례'로 굳어져 우리말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또 일설에 따르면 외부에서 들어오는 음식물에는 잡귀가 붙어 있으므로 먹기 전에 일부를 떼어 버림으로서 이 잡귀를 쫓았다는 데서 유래된 것이라고도 전한다.
지금도 이같은 습속이 일부 지역에 남아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16. 조왕단지 2016-11-21
조왕( 王)이란 부엌을 맡은 신을 말함인데, 고대의 미개인들이 믿던 다신교(多神敎)의 습속으로 내려온 것인지는 몰라도, 우리들의 주변에는 많은 신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즉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집터를 지켜주는 '터주신'이 있고, 또 집을 지키는 '성주'가 있는가 하면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부엌에는 조왕신의 상징으로 '조왕단지'를 갖추어 놓고 1년 동안 비우지 않고 계속 물을 채워 두는 것이다.
그런데 각 가정에 따라 다르다.
즉 매일 아침 새로운 물로 갈아 놓는 집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아예 조왕단을 만들어 놓은 가정도 있었다.
15. 횡수막이 2016-11-21
이 횡수(橫手)란 말은 글자 그대로 뜻밖의 운수(뜻하지 않은 운수)란 뜻이요, 또한 막이란 막는다는 말로서 횡수막이는 뜻밖에 닥쳐오는 재액을 막는다는 뜻이다.
즉 당해의 횡액을 막으려고 정월달에 무당이나 판수를 불러 실시하는 일종의 굿을 횡수막이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횡수막이를 우리 시골에서는 흔히 '홍수매기'라고 부르는데 이의 어원(語原)은 어디 까지나 '횡수막이'가 옳은 것이다.
즉 홍수매기란 횡수막이의 와음(訛音)인 것이다.
그러나 횡수막이란 원어(原語) 보다는 오히려 와음인 홍수매기를 많이 쓰고 있는 것은, 오랫동안 민간인 사이에서 전래되어 오면서 굳어져버렸기 때문에 편의상 그디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횡수막이의 방법은 가족 중에 당년에 횡수가 있는 사람이 있으면, 이 횡수를 미리 막기 위해 무 당을 불러 실시한다.
이 때는 쌀 3되 3홉에 팥을 넣어 떡을 찌는데 3겹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소창지 3자 3치, 짚세기 3켤레, 돈 3냥을 준비하여 가지고 비교적 사람의 왕래가 많은 네 거리에 가서 십자형으로 짚을 깔아놓고 그 위에 떡시루를 올려 놓는다.
따라서 준비한 돈과 신발, 채, 실 등을 옆에 놓고 상 위에 촛불을 켜놓은 다음 무당이 북과 양 판을 치면서 주문(呪文)을 왼다.
이때 당년의 액운이 있는 사람이 저고리 동정을 떼어서 불에 태 우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 해 동안 아무런 재액을 당하지 않고 무사히 보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횡수막이는 각 지역에 따라 실시하는 방법이 다르다.
어느 지역에서는 백설기, 채, 술, 신 한 켤레, 동정 한 개와 촛불을 켜놓고 실시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쌀 3되 3홉, 팥을 넣은 3겹의 떡, 소창지 3자 3치, 신발 3켤레, 돈 3냥 등 모두 삼자가 들어가는데 이 삼(三)이란 한자어에는 끝낸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즉 횡수막이를 실시하여 재액을 빨리 끝낸다는 것이다.
또한 붉은 팥은 벽사(酸邪)의 뜻이 있는 것이다.
지금은 이같은 습속들도 우리들의 생활 주변에서 사라진지 이미 오래된 것 같다.
14. 성주제 2016-11-21
성주란 집을 지켜준다는 신령을 말함인데, 집을 새로 짓거나 또는 이사를 하였을 때는 반드시 판수나 무당을 불러 떡시루를 해다놓고 기원한 뒤에 백지(窓戶紙) 속에 동전을 넣고 동그랗게 접 어서 방이나 대청의 대들보에 붙이고 이를 받드는 것이다.
특히 가을 추수가 끝나면 성주 앞에 시루떡을 해다 놓고 기원하는 풍습이 우리들의 생활 속에 오랫동안 젖어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이와같은 풍속도 우리들의 주변에서 사라져간지 이미 오래 된 것 같다.
13. 고사(告祀) 2016-11-21
고사란 개인을 비롯하여 온 집안이 재액(災厄)을 당하지 않고 행운이 계속되도록 신령에게 기원하는 일종의 제사를 말한다.
이 고사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풍속의 하나로서 지금까지 전래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본래 고 사는 가을철에 주로 지냈으며, 또한 고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미리 몸가짐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일을 보아서는 안되며, 경건한 마음으로 근신해야 한다.
따라서 대문 밖에는 대접 크기의 황토 3무더기를 만들어 놓거나, 또는 문 위에 금줄을 달아 외래인의 출입을 금지시킨다.
이렇게 한 다음 고사를 지내는데, 고사에는 시루떡을 비롯하여 채, 과 일, 정화수 등을 차려놓고 조상신, 터주신, 성주신, 조왕신, 삼신 등에게 제를 올린다.
고사는 무당이나 판수를 불러 지내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가정주부가 중심이 되어 실시하지 만 옥외에서의 고사에는 남자가 관장하였다.
요즘도 고사의 명맥은 이어져 내려오고 있지만, 실시 방법은 매우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 금은 앞에서 말한 전통적인 가정 내에서의 고사보다는 사업장에서의 고사가 수시로 행하여 지고 있는 것 같다.
즉 공장 운영이 잘 안되면 공장에서, 새차를 구입했으면 차 앞에서, 선박을 가진 사람은 선박 등에서 고사를 지내며, 회사의 번영과 무사고를 마음 속으로 비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의 고사에는 꼭 돼지머리가 오르는 것이 특징이다.
12. 장승제(長丞祭) 2016-11-21
이 장승은 긴 통나무에 사람의 얼굴을 기이(奇異)하게 새겨서 붉게 칠하였는데, 하나는 천하대 장군(天下大將軍), 또 다른 하나는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란 글씨를 파서 마을 입구에 세운 것이다.
이는 마을이나 성(城)을 수호하는 신이라 하여 매년 정월 대보름날에 마을에서 제사를 지내니 이를 장승제라 불렀던 것이다.
이렇게 장승제를 재내는 것은 악성전염병을 예방하는 동시에 모든 재난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는데 그 뜻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 장승은 거리를 표시하는 이 정표(里程標)의 역할도 하였던 것이다.
즉 장승을 10리나 5리의 간격으로 세워두어 길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도 했다.
지금도 각 지역에는 옛날의 장승이 버티고 서 있음을 간간히 볼 수 있는가 하면 민속의 하나로 서 이를 다시 복제하여 새롭게 세우고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11. 용왕제(龍王祭) 2016-11-21
땅에는 지신(地神)이 있듯이 바다에는 해신(海神)이 있어 바다에서 일어나는 인간 관계의 모든 화복을 관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았다.
특히 우리 태안은 반도이므로 3면이 바다에 접해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생활터전이 바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어민들은 해신을 유력한 신으로 숭배하 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선박에 의한 고기잡이를 비롯하여 그물(그무질), 사둘진(사두질), 살 (漁箭), 돌살 (독살) 등을 이용한 어로(漁撈), 썰물 때 바다에 나가 미역과 우뭇가사리 등등 각종 해조류(海藻類)를 채취하고 또한 낙지, 게, 조개, 고동 등 실로 다양한 해산물을 수확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난날의 농어민에게는 바다가 생활 터전의 전부라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였으니, 그들이 바다를 소중히 여겼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와같이 어촌에서는 어로작업의 안전과 개인의 구복을 위해 연초에 지성으로 용왕제를 지냈던 것이다.
지금은 이같은 풍속도 거의 사라진 것 같으나, 배를 가지고 있는 가정에서는 지금도 출어(出漁) 전에 뱃고사는 지내고 있는 것 같다.
10. 서낭제(成隍祭) 2016-11-21
서낭제란 서낭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함인데, 이 서낭신은 한 마을의 수호신(守護神) 으로 받드는 신이다.
서낭은 대개 마을 입고 산마루에 있는데, 마을에서 공동으로 서낭제를 지내는가 하면, 또는 개인의 구복(救福)을 위해 지내기도 하였다.
서낭제 때 떡시루를 비롯하여 포(脯), 채 등을 갖추어 놓고, 또한 색깔의 헝겊을 오려서 울긋 불긋하게 나무가지에 묶어 놓는다.
새벽 일찍 나들이를 떠나다 서낭제 떡을 발견하면 먹는 수도 있으나, 이땐 다 먹는 것이 아니 고 일부만 먹는데, 이 떡은 집에 가져오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지 않고 그대로 지나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서낭 앞을 지날 때에는 반드시 돌을 3개 주어서 서낭에 던지고 침을 3번 뱉어야 한다는 풍속이 극히 최근에까지 내려왔으나, 요즈음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서낭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돌을 던져 놓았기 때문에 마치 무덤같이 되었는가 하면 나무가 우거지고 또한 나무가지에는 5색 의 헝겊이 매달려 있어 우중충하고 보이므로 밤엔 이곳을 지나가는 뭇사람들이 매우 꺼려하고 있었다.
필자도 소년 시절에 이같은 경험을 한 적이 없다.
지금은 사회적인 발전과 도로확장 등으로 인하여 이같은 서낭당이 대부분 없어진지 오래 되었고, 또한 이런 사실을 믿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 담당부서 : 문화재관리팀
  • 담당자 : 박우진
  • 연락처 : 041-670-5937
  • 최종수정일 : 2018-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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