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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의 역사

마늘은 백합과 파속에 속하는 인경채소로서 학명은 Allium sativum L.이며, 영명은 Garlic, 한명(漢名)은 대산(大蒜) 또는 호(葫)라 한다.

마늘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로 추측되며 우리나라에도 산마늘이 있었는데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마늘은 기원전 2세기경 한나라의 장건이 호지(서역)에서 마늘(蒜)의 큰 것을 가져왔다는 기록이 있다.

마늘에 대한 역사적 기록으로는 기원전 4,000년경 이집트가 피라밋을 건설하면서 이에 종사한 노동자들에게 마늘과 양파, 무 등을 먹이는데 소요되는 경비기록을 피라밋 벽에 기록으로 남겼으며 또한 오늘날 고대 이집트의 무덤에서 마늘이 발견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는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에 곰과 호랑이가 환웅께 사람으로 환생하게 해 달라고 빌었더니 환웅께서 신령스러운 풀인 마늘 20통과 쑥 한자루를 내리면서 "이것은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되리라"고 하였는데 호랑이는 이를 지키지 못했으나 곰은 그대로 지켜서 21일만에 웅녀로 환생했다는 건국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마늘은 우리민족의 역사와 함께 한 식품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입추(立秋) 후 해일(亥日)에 마늘밭에 후농제(後農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어 삼국시대부터 마늘이 이미 약용, 식용식물로 우대 받았음을 알 수 있다.

1527년에 최세진이 편찬한 훈몽자회에서는 산(蒜, 胡蒜)은 마늘, 소산(小蒜)은 달래라하였고, 1613년에 허준이 편찬한 동의보감에서는 대산(大蒜)은 마늘, 소산(小蒜)은 족지, 야산(野蒜)은 달랑괴라 하였다. 국어사전에 족지는 산달래라고 하고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

태안에서 마늘이 언제부터 재배된 기록은 없지만 옛날부터 재배되어온 육쪽마늘의 주산지역으로 근흥면 수룡리 지역이 육쪽마늘의 종주지이며 조선시대 영조대왕께 진상하였다고 구전되고 있으며 태안육쪽마늘은 한지형 지역재배종으로 우수 형질을 선발하여『태안종』으로 등록되어 있고 밭마늘만 재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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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 2019-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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