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태안지역에서도 많은 토기(土器)와 석기(石器)들이 출토되었지만, 이는 학술적인 과정을 거쳐서 정식으로 발굴 조사된 것이 아니라, 산지(山地)를 개간하다 우연히 발견되었거나 아니면 경작지(耕作地)에서 출토된 것이 대부분이다.
이같은 경로를 통해 발견된 것이므로 출토 과정에서 거의 파손된 유물들이다.
특히 태안 지역은 아직도 지역사(地域史) 연구가 매우 부진한 상태에다 산지개간을 하다 고분(古墳)을 발견해도 즉시 작업을 중단하고 관계 기관이나 연구자에게 알려 학술 조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시간내에 작업을 완료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마구 파헤쳐 고분의 구조는 물론 출토된 유물조차 수습할 수 없도록 파손시켜 놓고 작업을 마친 수 개월 뒤에야 비로소 이같은 내용을 발설하니 사후 약방문(死後 藥方文) 격이 되고 만다.
또한 이런 과정을 통해 수습된 일부의 유물이라도 인근의 교육기관이나 연구기관에 제공하여 교육 자료로 활용케 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이를 매각하여 수익을 얻으려는 속셈에서 외지로 반출하는 사례(事例)가 있다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동안 산기슭이나 밭고랑 또는 길가나 집의 추녀밑 마루밑에서 뒹굴어 다니던 쓸모 없는 선인들의 때가 묻은 석기나 토기의 파편 등을 교사와 학생들이 하나가 되어 십여년간 수집해서 이를 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있는 안남중학교(安南中學校)와 태안여자상업고등학교(泰安女子商業高等學校)에 소장된 100여점의 유물과 고남 패총군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토기란 원시시대에 사용한 진흙으로 만들어 구어낸 그릇을 일컫는 것인데, 이는 모양과 무늬 등의 생김새를 통해 민족과 그 시대의 특색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그러면 태안여상이 소장하고 있는 비교적 완제품에 가까운 몇점의 토기를 우선 살펴 보기로 한다.
이 토기는 비교적 둥근 동체에 맑은 회색 경질의 선조문 토기인데, 동체의 아래쪽에만 무늬가 들어 있다. 그리고 동체의 하부 전면 사선이 길게 보이는데, 언뜻 보면 마치 금같이 보이나 실은 이것은 금간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릇을 만들 때 기술 부족으로 인하여 동체 부분이 안쪽으로 우그러져 들어간 곳이다.
이 토기의 크기는 높이 11.5㎝, 구경 9㎝, 밑지름 11㎝, 그리고 동경이 52㎝로 이루어진 평저토기이다.
이 토기는 비교적 둥근 동체에 옅은 갈색의 무문 경질토기인데, 경부는 짧고 구연은 벌어져서 외반되었다. 그런데 이 토기는 동체 위부분에 2㎝ 간격으로 두 줄의 선이 음각되어 있는데, 2㎜의 크기이다.
토기의 크기는 높이 16.6㎝, 구경 6.4㎝, 밑지름 15㎝, 그리고 동경이 54㎝로 이루어진 평저토기이다.
이 토기는 비교적 동체가 둥근 회색의 연질토기로서 경부는 약간 길고 구연은 외반되어 있는데, 입술 부분이 파손되어 볼품이 없다.
또한 이 토기는 다른 토기서는 보기드문 동체 일부가 울퉁불퉁하게 생겼는데, 이는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기술 부족으로 인하여 생겨난 것으로 믿어진다.
이와 비슷한 토기가 백곡리(白谷里)에서도 출토된 예가 있다. 이 토기의 크기는 높이 15㎝, 구경 6.5㎝, 밑지름 8.5㎝, 그리고 동경이 47㎝로 이루어진 평저토기이다.
이 토기는 구부에 비해 동체가 매우 크고 둥근편인데, 옅은 갈색의 선조문 경질토기로서 구연은 밖으로 벌어지고 일부분이 파손되어 균형미를 상실하고 있다.
크기는 높이 15.3㎝, 구경 6.5㎝, 밑지름 9㎝, 그리고 동경이 48㎝로 이루어진 평저토기이다.
이 토기는 동체가 둥근 옅은 갈색의 선조문 연질토기이다. 구연은 외반되었는데 출토되는 과정에서 구연부가 일부 파손되어 균형미를 상실하고 있는 점이 흠이다.
크기는 높이 8.5㎝, 구경 6㎝, 밑지름 8㎝, 그리고 동경이 40㎝로 이루어진 경저토기이다.
이 토기(보시기)는 적갈색의 연질토기로서 태토에 왕모래가 섞여 있는데, 소성(燒成)이 불량한 무문토기이다. 크기는 높이 8㎝, 구경 10㎝, 밑지름 8㎝, 그리고 동경이 34㎝로 이루어진 평저토기이다.
이 토기는 둥근 동체에 비교적 경부가 긴데, 구연은 약간 외반되었으며, 소성이 양호한 암갈색의 선조문 경질토기이다.
그런데 이 토기는 일본(日本) 北關東地方의 희木田野에서 출토된 제3형식(중기)의 26번 토기, 그리고 賴戶內海 지방의 岡山王泊에서 출토된 제3형식(전기)의 22번 토기와 비슷하다. 이 토기의 크기는 높이 24.5㎝, 구경 14.5㎝, 동경 60.2㎝로 이루어진 원저토기(圓底土器)이다.
이 토기는 굽이 달려있고 경부가 긴 것이 특징인데, 굽에는 5개의 직사각형으로 된 구멍(透孔)이 뚫려 있다.
이 구멍의 크기는 가로 1.2㎝, 세로 1.0㎝로서 5개가 모두 같은 것인데, 구멍과 구멍 사이의 거리가 짧은 것이 3㎝, 긴 것이 5.5㎝로서 일정치 않다.
또한 구멍이 일단일 경우는 대부분 굽의 중간에 뚫는 것이 통례인데, 이 토기는 중앙 부분이 아니고 굽의 밑에서 약 2.3㎝ 올라온 부위에서 동체 아래쪽에 바싹 붙여서 구멍을 뚫은 것이 흔히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다.
그리고 굽의 하단 표면에 정교한 3단의 턱이 있는데, 이 3단 턱 위에서 바로 구멍을 뚫은 것이 이 토기의 특징이며, 또한 대부투공 토기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한 예이다.
그리고 동체는 무문인데, 그의 상단 끝에서 경부 전체에 4줄의 물결무늬가 시문데어 있는 매우 정교한 편이다.
이 토기의 생김새로 미루어 보아 신라 토기의 형식이 가미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또한 당시의 백제(百濟)의 지정학적인 입장에서 고찰해 볼 때, 중국 화남지방의 토기 형식의 영향을 받았음을 배제할 수도 없을 것 같다.
토기의 크기는 높이 21㎝, 구경 13.5㎝, 동경 45㎝, 경장 6㎝ 그리고 굽의 높이 40㎝로 이루어진 회색 경질의 토기이다.
이 토기는 경부가 짧고 입이 좁은데 비하여 동체가 크고 둥근 것이 특징이다. 구연은 외반되었고 몸통에는 선조문이 시문된 짙은 회색 경질의 토기이다. 크기는 높이 15.40㎝, 구경 6.3㎝, 밑지름 9㎝, 그리고 동경이 48㎝로 이루어진 평저토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