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의 상업상을 살펴보면 농수산업 다음으로 크게 발전해 왔다고는 하지만 다른 지역에 비하면 매우 영세성을 면치 못하였다.
특히 일본 강점기(日本强占期)에는 일본인(曰本人)이 대부분의 점포(店鋪)를 차지하고 있었으니 상권은 완전히 일본인의 수중에 들어갔던 것이다. 이같이 대부분의 자본이 일본인에 의해 탈취되어 갔으며, 또한 한국인은 자본이 있어도 상업을 천시하여 왔다. 그러나 상업에 호기심을 가진 자본가가 있다하더라도 상업 경영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큰 성과를 보지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8.15광복과 더불어 상업 발전의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으나 축적된 자본이 없고 또 상품 생산이 여의치 못해 상업 발전이 매우 부진하던 중, 설상가상으로 6.25동란의 민족적 비극을 맞이하게 되어 상가는 대부분 폐허화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휴전(1953) 이후 상가는 점차적으로 활기를 되찾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태안읍을 중심으로 시장이 확장되면서 종래의 남문리 시장이 동문리로 옮겨져 신시장으로 발전하며 명실상부한 현대시장으로 탈바꿈하여 상설 시장화 되므로서 종래의 전통적인 태안장은 무색해졌다.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우리 경제는 급진적인 발전을 가져왔고 이에따라 각분야의 산업이 부흥하여 우리 상품이 국제시장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또한 고속도로가 급진적으로 발전하면서 전국이 일일생활권이 되니, 상품 유통이 무척 활발해지고 생활이 향상되어 대형 소비시대에 이르자 상업은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그리고 근대적 점포상업의 상징인 서구식슈퍼마켙이 태안읍을 중심으로 각 읍면에 설립되므로서 소비생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