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통령선거는 1948년7월 20일에 실시되었는데 간접선거였다.
간접선거였으므로 본군과는 직접 관계는 없으나, 참고로 열거하면 후보자는 6명이었는데, 재석의원 197명에 의해 투표한 결과 이시영(李始榮) 113표·김구(金九) 65표·조만식(曺晩植) 10표·오세창(吳世昌) 5표·장택상(張澤相) 3표·서상일(徐相日) 1표로써, 3분의 2이상 득표자가 없기 때문에 최고 득표자 2명인 이시영과 김구에 대하여 결선 투표를 한 결과 이시영 133표, 김구 62표를 얻어 이시영 후보가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제3대 부통령 선거는 제2대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1952년 8월 5일에 실시했는데, 직접 선거였다.
투표결과 함태영(咸台永) 후보가 유효 투표 총수의 41. 5%에 해당하는 2,944,813표를 얻어 제3대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부통령 선거의 본군 후보자별 득표 실태를 보면 다음의 도표와 같다.
(1952. 8. 5 시행)
투표구명 | 선거인수 | 투표자수 | 기권자수 | 투표율 | 후보자별득표수 | 합계 | ||||||||||
---|---|---|---|---|---|---|---|---|---|---|---|---|---|---|---|---|
유효 | 무효 | 합계 | 이윤형 | 함태영 | 이갑성 | 조병옥 | 임영산 | 백성욱 | 정기원 | 전진한 | 이범석 | |||||
서산군 | 90,307 | 79,780 | 1,413 | 81,195 | 9,112 | 90.6% | 2,456 | 3,727 | 1,857 | 2,627 | 1,441 | 755 | 842 | 2,984 | 1,913 | 79,782 |
제4대 부통령 선거는 제3대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1956년 5월 15일에 실시했는데 직접 선거였다.
6명의 후보 중 장면(張勉)이 유효투표 총수의 46.5%에 해당한 4,012,654표를 얻어 제4대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본군의 후보자별 득표 현황을 보면 다음의 도표와 같다.
(1956. 5. 15 시행)
투표구명 | 선거인수 | 투표자수 | 기권자수 | 투표율 | 후보자별득표수 | 합계 | |||||||
---|---|---|---|---|---|---|---|---|---|---|---|---|---|
유효 | 무효 | 합계 | 장면 | 이기붕 | 윤치영 | 이윤영 | 백성욱 | 이범석 | |||||
서산군 | 98.091 | 88,084 | 4,557 | 92,641 | 5,450 | 94.6% | 29,258 | 42,709 | 3,008 | 415 | 7,018 | 5,679 | 88,084 |
제5대 부통령 선거는 1960년 3월 15일 제4대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실시한 직접선거였다.
부통령 입후보자는 자유당의 이기붕(李起鵬)·민주당의 장면(張勉)·통일당의 김준연(金俊淵)·여자국민당의 임영신(任永信) 등 모두 4명인데, 민주당의 장면을 제외하고는 자유당 대통령 후보인 이승만의 노선을 지지하였다.
투표자 수는 선거인 총수의 97.0%에 해당하는 10,861,573명이었고 유효 투표는 투표자 총수의 96.9%에 대당하는 10,27,445표였는데, 후보자별 득표는 자유당의 이기붕 후보가 유효 투표 총수의 79%에 해당하는 8,337,059표를 얻어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 선거는 부정 선거라 하여 동년 4월 26일 국회의 결의에 의해 무효가 되었다.
본군에서의 후보자별 득표 현황을 보면 다음의 도표와 같다.
(1960. 3. 15 시행)
투표구명 | 선거인수 | 투표자수 | 기권자수 | 투표율 | 후보자별득표수 | 합 계 | |||||
---|---|---|---|---|---|---|---|---|---|---|---|
유 효 | 무 효 | 합 계 | 이기붕 | 김준연 | 임영신 | 장면 | |||||
서산군 | 97,554 | 94,762 | 874 | 95,636 | 1,918 | 98% | 88,147 | 1,000 | 224 | 5,391 | 94,7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