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읍은 현재 태안군 관할의 2읍 6면 중의 하나인데 6개 법정리(法定里)와 27개 행정리(行政里) 그리고 172개의 반(班)으로 형성되어 있다.
일본 강점기(日本强占期)었던 지난 1914년 그들이 통치 수단의 일환으로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면서 안상면(安上面)과 안하면(安一面)을 안면면(安眠面)으로 개칭하고 서산군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시켰다.
또한 위의 2개면 관할하에 있던 16개리를 통폐합(統廢合)하여 리명(里名)을 다시 누동리(樓洞里)·신야리(新野里)·중장리(中場里)·장곡리(長谷里)·고남리(古南里)·정당리(正堂里)·창기리(倉基里)·승언리(承彦里)·황도리(黃島里)·간월도리(看月島里)·죽도리(竹島里) 등 11개리로 축소 조정하여 안면면의 관할하에 편입시켰다.
이렇게 서산군의 관할하에 편입된 안면면은 66년 간 내려오다 지난 1980년 12월 1일 안면읍(安眠邑)으로 승격되었다. 읍으로 승격하여 10년 가까이 내려오던 안면읍은 지난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復郡)됨으로 인하여 다시 태안군의 관할하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안면(安眠)의 지명 유래(地名由來)에 대해 고찰해 보면, 단순히 안면(安眠)이란 낱말에서 생각할 땐 「편하게 잘 잔다」는 뜻인데 이로써는 설득력이 부족한 것 같다.
강희자전(康熙字典)에 따르면 안(安)은 편안하다·고요하다·값싸다 등등의 뜻이 있고, 면(眠)은 졸다·잔다·어지럽다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 외에 범조수지언식(凡鳥獸之승息)이라 했다. 그러므로 안면(安眠)이란 곧 조수가 편안히 누어 쉴 수 잇다는 의미로서 당시의 안면도가 숲으로 우거져 있는 자연 환경을 그대로 잘 나타낸 지명인 것 같다.
승언리는 현재 안면읍 관할의 6개 법정리(法定里) 중의 하나인데, 본래는 태안군 안상면의 관할 지역이었다.
일본 강점기(日本强占期)었던 지난 1914년 그들이 통치수단의 일환으로 전국의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창기리(倉基里)와 정당리의 각 일부를 병합해서 리명(里名)을 승언리(承彦里)라 하여 서산군 안면면에 편입시켰다.
이렇게 안면면의 관할하에 편입된 승언리는 66년간 내려오다, 지난 1980년 12월 1일 안면면이 안면읍(安眠邑)으로 승격됨에 따라, 승언리는 다시 안면읍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어 10년 가까이 내려오다,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復郡)됨으로 인하여 승언리(承彦里)는 태안군 안면읍 관할하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이 승언(承彦)이란 지명 유래에 대해 살펴보면, 일찍 통일신라(統一新羅)시대에 청해진(靑海鎭)을 중심으로 서남해(西南海)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장보고 대사(張保고大使)의 휘하에서 활동하던 승언(承彦)이란 장군이 안면도에 상주(常駐)하면서 해상활동을 전개하여 안면도를 수호하였음으로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지명(地名)을 승언(承彦)이라 명명한데서 연유된 것이라고 한다.
정당리는 현재 안면읍 관할의 6개 법정리(法定里) 중의 하나인데 본래는 태안군 안상면(安上面)의 관할 지역이었다.
지난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 때에 정기리(正基里)·창기리(倉基里) 그리고 장당리(長堂里) 등 각 일부를 병합하여 리명(里名)을 정당리(正堂里)라 개칭해서 서산군의 관할하에 편입시켰다. 이렇게 서산군에 편입되어 75년 동안 내려오던 정당리는, 지난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復郡)됨에 따라 다시 태안군 안면읍의 괄할하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정당리(正堂里)에 대한 유래를 살펴보면 위의 정기리의 정(正)과 장당리의 당(堂)자를 따서 합성 약칭(合成略稱)으로 정당리라 명명했으므로 지명으로서의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창기리는 현재 안면읍 관할의 6개 법정리(法定里) 중의 하나인데, 본래는 태안군 안상면(安上面)의 관할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우포리(牛浦里)와 창기리를 합쳐 리명(里名)을 다시 창기리라 하여 서산군 안면면에 편입시켰다. 이같이 서산군에 편입되어 75년간 내려오던 창기리는 지난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復郡)됨에 따라 다시 태안군 안면읍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창기(倉基)의 유래에 대해 살펴보면 조선조(朝鮮朝)때 이곳에 조세창고(租稅倉庫)가 있었으므로, 이에 연유하여 마을 이름을 창터말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뒤에 지명의 한자 표기에 따라 창기리(倉基里)가 된 것이다.
중장리는 현재 안면읍 관할의 6개 법정리(法定里) 중의 하나인데, 본래는 태안군 안하면(安下面)의 관할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신야리(新野里) 일부 지역을 중장리에 병합시켜 리명(里名)을 그대로 중장리라 하여 서산군 안면면에 편입시켰다. 이같이 서산군에 편입되어 75년간 내려오던 중장리(中場里)는 지난 1989년 1 월 1일 태안군이 복군(復郡)됨에 따라, 다시 태안군 안면읍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중장(中場)의 유래에 대해 살펴보면 안면도의 중앙부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편의상 그대로 중장(中場)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신야리는 현재 안면읍 관할의 6개 법정리(法定里) 중의 하나인데, 본래는 태안군 안하면(安下面)의 관할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리명(里名)을 신야리(新野里)라 하여 서산군 안면면에 편입시켰다. 이같이 안면면에 편입된 신야리는 75년간 내려오다 지난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復郡)됨에 따라 다시 태안군 안면읍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신야(新野)의 유래를 살펴보면 대단위 간척지(干拓地)로 인해 새로운 들판이 이루어졌으므로 이를 새들이라 하였으며, 따라서 마을 이름도「 새들말」이라 했는데 뒤에 말이 탈락된채 새들만으로 마을의 명칭이 되었다.
그리고, 지명의 한역(漢譯)에 의해 신야(新野)가 되었다.
황도리는 현재 안면읍 관할의 6개 법정리(法定里) 중의 하나인데, 본래는 태안군 안상면(安上面)의 관할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리명(里名)을 황도리(黃島里)라 하여 서산군 안면면에 편입시켰다. 이같이 서산군에 편입되어 75년간 내려오던 황도리는, 지난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復郡)됨에 따라 다시 태안군 안면읍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이 황도(黃島)의 유래에 대해 살펴보면, 대부분의 농경지가 밭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여름철이면 보리가 익어 온 섬이 누렇게 보이므로 이에 연유하여 누런섬이라 했다. 뒤에 지명의 한자 표기에 다라 황도(黃島)가 되었는데, 본래는 황도(黃島)로 표기 했었다.
이 섬에 사람이 정주(定住)하기 전에는 개척되지 않아 거치른 황무지었으므로, 그대로 거친섬이라 했는데, 뒤에 한자 표기에 따라 황도(荒島)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