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구도는 이원면(이북면) 내리의 앞바다에 있는 마치 장구 모양의 조그마한 섬을 일컫는 것이다. 이 장구도의 유래에 대하여 살펴보면 조선조의 세조때에 순절한 충의공 김문기의 후손 김흥관의 영조때 중추부사의 자리에서 국록을 받고 있었다. 그는 정의에 민감하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관리였다.
마침 영조가 승하하고 정조대왕이 등극한 이후 흥국영의 세도가 날로 팽창해지자 이에 반기를 들고 관직을 버린채 조용한 시골로 낙향한 것이 바로 이원면 내리였다. 이렇게 낙향한 그는 우선 서식처를 구하기 위해 후망산에 올라 사방을 두루 살펴보니 앞바다에 마치 장구 모양의 조그마한 예쁜 섬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매우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섬 모양이 마치 장구같이 생기어서 더욱 그랬다.
장구란 본래 평화롭고 즐거울 때 사용하는 악기(樂器)이므로 이 섬에 들어가살게 되면 흥국영의 세력이 제아무리 크다하더라도 이곳까지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일신상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확인하고 이 섬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그후 이 내리에는 김흥관을 중심으로 그의 측근자들이 많이살게되어 후손들이 번창하였다. 지금도 이 곳에는 그의 후손들이 50여 가호(家戶)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 장구도에 관한 이설(異說)이 있다. 즉 이 장구도는 본래 「장군도」였다는 것이다. 이 섬을 장군도라 부르게 된 연유는 섬의 모양이 마치 장군같이 생겼다하여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인데, 장군이란 물·술·간장 등을 담아 옮길 때 쓰는 오지 또는 나무로 만든 그릇을 말한다.
요즘은 장군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그 생김새를 알 수 없지만, 참고로 민속박물관에 가면 그 실물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장군도가 긴 세월 오랫동안 내려오면서 장군의 「군」자에서 니은「ㄴ」이 탈락되어 편의상 주민들이 장구도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용낭굴이 있는 곳은 이원면 내리 2구의 속칭 만대라고 하는 중막굴에 있다. 이 중막굴에는 꾀깔(고깔의 와전)봉이 있고 이 꾀깔봉 앞에는 여섬이 덩그렇게 보이는데 바닷물이 빠져 나가면 육지와 연결되어 사람들이 자유로히 드나들 수 있게 되어있다.「용낭굴」이란 말은 본래「용이 나온 굴」에서 온말이다. 이 말이 줄어서 용난굴로 되었는데, 이것이 다시 수 10년 내려오면서 발음의 편의상「용낭굴」로 굳어져서 오늘에 와전되어 내려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도 독자(讀者)의 이해를 돕기 위해 통칭으로 부르는「용낭굴」로표기하고자 한다. 특히 이 용(龍)에 관한 전설이라든가 또한 용자가 들어가는 지명(地名)은 전국 각지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데, 우리 태안군도 예외(例外)가 아니어서 군내 각 지역에는 용에 대한 전설과 지명이 말이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용이 살고 있었다든가 혹은 용이 굴에서 나와 하늘로 올라 갔다든가 하는 등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동굴에 대해서만 우선 몇 군데 살펴보기로 한다. 이 중막굴에 있는 용낭굴은 산줄기가 벋어내리다 끊긴 해변가에 있는데, 바닷물이 들어 왔을 때는 굴속까지 물이 들어가고 바닷물이 빠져 나가면 사람들이 굴 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는 굴이다. 이 굴의 입구의 높이는 약 2미터 50센티이고 밑바닥의 너비가 약 1미터 60센티로 되어 있는 3각형이었다.
필자가 이 굴을 답사한 것이 지난 1987년 6월 26일이었는데, 굴 속에는 바닷물이 들어올 때 모래가 밀려들어 쌓여서 약 7미터 이상은 들어갈 수 없었다.
또한 이 용낭굴의 특징은 깊숙히 들어가면 양쪽으로 뚫려있다고 하는데, 역시 모래로 막혀 있어 확인할 수가 없었으며, 따라서 용이 앉아 있었다는 자리의 흔적과 용이 먹던 샘까지 있었다는데 모두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동네 노인들의 말에 의하면 용이 이 굴에서 도를 닦고 무사히 승천(昇天)하였는데, 승천할 때 굴속에서 나와 산을 타고 올라갔기 때문에 지금도 그 흔적이 하얗게 남아 있다는 흥미있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역시 그럴 듯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입구의 바깥쪽 윗 부분이 암석의 벼랑으로 되어 있는데 그 길이가5.6미터에 달하고 있었으며 또한 입구 천정에서부터 바깥의 암석 중심부에 폭30센티 가량의 차돌이 뚜렷하게 산꼭대기를 향해 길게 박혀 있었다. 필자는 이 실상을 보고 과연 옛날에는 당연히 용이 올라간 흔적이 남아 있다고 힘주어 말할 수 있는 실증물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6. 25동란 때만 하여도 굴속이 묻혀 있지 않아 동네 사람들이 피난처로 이용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5.6미터 밖에 남아있지 않다.
이원면 내리, 이곳은 우리고장 서쪽 끝에 있는 돌출한 해안인데 이 마을에는 숨은 고개라는 조그마한 산이 있다. 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드는 이 능선은 나즉한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에 오르면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경치 좋은 곳이기도 하다. 이 고개, 그러니까「숨은고개」라는 이름이 지어지기 까지는 애틋한 사연이 있다. 그 이야기는 이러하다
옛날, 원북면 학암포 앞바다와 이원면 내리를 잇는 바다에는 조기가 많이 살았었다 그 당시 이곳 주민들은 바다에 나가 조기잡이만 해도 생계를 유지할만큼 조기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조그마한 범선을 타고 나가면 배가 물속에 잠길 정도로 조기를 잡아 싣고 왔다는 것이다.
이처럼 조기가 많이 사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이 조기떼를 지켜주는 용이한 마리 있었는데 이 용이 조기들을 마음놓고 살도록 보호하고 있었다. 이 바다에는 한동안 바다구렁이라든가 무서운 상어라든가 때로는 고래같은 바다의 무법자들이 나타나 조기떼를 잡아먹고 조기의 서식을 막아 조기가 멸종위기에 있었으나 용이 이들 조기를 보호하고 부터는 조기떼가 모여들었고 살기좋은 여건이 갖추어져 있어서 조기는 서해바다를 생활의 터전으로 삼고 그 수가 날이 갈수록 불어 나갔다.
이 조기를 보호하는 용은 빛깔이 누렇게 생겨서「황룡」이라고 불렀는데 황룡의 착한 마음씨 덕분으로 조기도 살고 주민들도 크게 덕을 보는 터였다.
그런데, 서해바다 멀리에는 또 한마리의 용이 살았다 이 용은 색깔이 푸른 색이어서 「청룡」이라 불렀는데 마음씨가 고약해서 이무기는 저리가라였다. 고기떼를 보호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고기를 잡아가고 바다의 횡폭한 동물들의 심술도 막아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 청룡이 사는 바다 근처에는 고기가 살지 못하고 다른곳으로 생활의 터전을 옮기어 죽은 바다나 다름이 없었다.
이 청룡은 마음씨가 고약한 그대로 심술도 궂고 시샘도 맡았는데 그는 언제나 이원 앞바다에 사는 조기떼가 탐이 났고, 그런 욕심을 채우자니 그 바다를 지키는 황룡이 몹시도 미웠다. 그래서 청룡은 호시탐탐 황룡의 영토를 넘보며 빼앗을 궁리를 했지만 그럴만한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청룡은 몸살이날 지경이었다.
"안되겠다 힘으로라도 황룡을 죽이고 조기떼를 찾아야 할것이야.
이렇게 마음을 굳힌 청룡은 어느 날, 황룡을 찾아갔다. 평소에 청룡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황룡으로서는 청룡의 방문이 달갑지 않았다.
"무슨 일로 왔소?"
"당신이 이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풍성한 먹을 것을 독식하는 것이 싫어서 따지러 왔소이다. "
"그건 잘못 아셨소. 나는 고기들을 잡아먹거나 괴롭히는 그런 용이 아니오. 다만 바다가 죽지않고 살아 움직이며 평화를 유지해야 되겠기에 그와 같은 사명으로 이 바다를 지키고 있을 따름이요."
"그 되먹지 않은 소리, 누가 그 소리에 감탄할 줄 아시오. 그러지 말고 이 바다 반만 나에게 양도하시오. 그럼 내 가만히 있으리다. "
"안되오. 반을 당신에게 주면 그 반은 모두 황폐한 바다가 될 것이요. 당신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내가 바다를 죽음의 길로 내어줄 수는 없소. 진작 단념하고 물러 가시요."
하지만 청룡은 쉽사리 물러서지 않았다. 여러 날을 찾아와서는 황룡을 달래기도 하고 협박하기도 하며 집요하게 황룡을 괴롭혔다. 이같은 사실을 안 바다의 고기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잘못하다가는 청룡의 밥이 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같은 바다의 분위기를 알아차린 청룡은 황룡을 다시 찾아가 결투를 신청했다.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당신이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니 당신을 죽이고라도 이 바다를 빼앗아야 하겠소. 우리 결투로 이긴 사람이 이 바다의 주인이 되는 것이요"
일방적인 선전포고에 황룡도 하는 수 없이 싸우기로 결심하고 힘을 길렀다.
그로부터 며칠 후, 청룡이 푸른 불빛을 뿜으며 황룡을 향해 덤벼들었다. 황룡도 누른불을 뿜으며 대응하였다. 두 마리의 용의 싸움은 가관이었다. 바다가 온통소용돌이 속에 휩싸였고 물결이 해안을 덮었다.
두 마리의 큰 용의 위력은 가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웠다. 황룡의 입에서 한줄기 거대한 불이 청룡을 향하여 쏘아 대면 청룡 또한 불기둥으로 막았다.
두 용의 입에서 뿜어내는 불기둥 때문에 바다는 용광로처럼 부글부글 끓었고 바다의 고기들은 떼죽음을 당하는가 하면 이웃 바다로 피난가기에 바빴다.
청룡과 황룡의 싸움은 바다에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원북면과 이원면 주민들에게도 공포와 불안을 안겨주었고 생계마져 위협을 주었다. 주민들은 날마다 용의 싸움을 구경하며 아무일도 못하고 앞날을 걱정하고 있었다.
"천재지변이야, 아니지 천재해변이구먼. 하늘이 노했나 봐."
"우리가 뭐 잘못한 게라도 있는가 생각좀 해보세."
"잘못한 일이 뭐 있나. 우리 이웃끼리 정이 두텁고 도둑이 없고 불효자도 없으며 고약한 사람도 우리 동네에 어디 한 사람이라도 있던가 하늘이 노할만한 일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게 무슨 괴변이지?"
사람들의 이같은 걱정을 알 까닭이 없는 두 마리의 용은 매일 싸움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두 마리의 힘이 동일했던지 승부는 좀처럼 나지 않았다. 청룡이 밑에 깔리는가 하면 황룡이 다시 밑으로 들어가고, 엎칠뒤칠 누구의 승리를 아무도 점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용들의 싸움은 여러 날이 지났다. 두 마리 모두가 지쳐 있었다 더이상싸울 기력이 없었던지 청룡이 휴전을 제안했다.
"하루만 휴전하자?"
"좋다. "
이렇게 하여 두 용은 하룻동안의 휴전에 들어갔다.
그 즈음 이원면 내리에는 젊은 무사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젊은이는 활솜씨가 뛰어나 명사수로 이름이 나 있었다. 그의 화살 앞에서는 피하는 것이 도무지 없었다. 날으는 새, 기는 뱀, 뛰는 노루며, 심지어 날으는 파리까지 명중시키는 솜씨였다.
이 젊은 무사는 큰 꿈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 나라의 명장이 되는 꿈이었다. 사람들도 이 젊은이의 꿈이 허황된 꿈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그의 활솜씨는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크게 될 인물이야!"
"암, 나라의 기둥이 되고도 남지."
"빨리 빛을 보아야 하는데 "
"그러지 않아도 과거 날짜가 열흘 남았대, 무과에 틀림없이 합격할거야."
사람들의 말대로 젊은이는 과거시험을 위하여 활쏘는 연습을 맹렬히 하고 있었다. 이제 과거시험 날짜가 앞으로 열흘, 내일은 일찍 일어나 한양을 향해 떠나야 한다. 한양까지는 줄잡아도 칠팔일이 걸려야 한다는 계산으로 젊은이는 길떠날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그날 밤, 젊은이는 여행을 위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쯤 잤을까 젊은이가 곤하게 잠들어 있는 그 단잠을 누군가가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그 사람은 누런 베옷을 입은 노인이었는데 수염이 하도 길어 앞가슴을 덮고 있었다.
"여보시오. 젊은이 ! "
"좀 일어나 보시오."
노인은 젊은이를 조심스레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젊은이는 번득 눈을 떴다. 그리고 자기를 깨우는 사람을 보았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누구신가요?"
"나말이요, 그보다도 잠을 깨워 미안하오. 잠시 일어나 내 말을 들어주시오. 긴히 할 말이 있다오."
젊은이가 옷을 입고 좌정하자 노인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우선 내가 누구인가 나를 소개하겠소. 나는 바다에 사는 황룡이라고 하오."
"황룡이라시면, 지금 한창 싸움을 하는 그 황룡이신가요?"
"그렇다오."
"그 황룡께서 어떻게 저를·.."
젊은이가 의아해하며 묻자 황룡은 지금 바다의 사정을 상세히 설명해 주고 있었다. 청룡의 음모로부터 시작하여 자기가 그동안 이 바다를 지켰기 때문에 사람들이 마음놓고 고기잡이를 할 수 있었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며 지금도 이 바다를 지키기 위해 청룡과 싸우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려주며 젊은이에게 도움을 청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인가요?"
"어려운 일이 아니오. 당신은 명사수가 아니오? 그러니 당신의 그 활솜씨를 잠시만 발휘해 주시오."
"하지만 나는 내일 과거를 보러 떠나야 합니다. 그러하니 제가 도울 수는 없습니다. "
젊은이는 이번 과거가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며 이 과거시험을 치루기 위하여 지금까지 갈고 닦은 솜씨인데 다른 일로 해서 그릇칠 수는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자 노인은 과거날짜가 아직도 여러날이 남았으니 하루쯤 늦게 간다고 해서 시험날짜를 넘기지는 않을 것이며 또 중요한 일은 젊은이의 과거는 개인의 일이지만 자기를 도우는 일은 바다를 살리고 이곳 주민을 살리는 일이니 어느것이 더 중요한가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젊은이도 생각해 보니 하루쯤 늦게 가도 부지런히 걸으면 늦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었고 또 황룡의 말대로 자기의 활솜씨로 바다를 살리고 이웃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것이라 생각되어 승락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고맙소. 승락해주니, 젊은이는 내일 마을 앞 동산에 가서 소나무밑에 숨어 있으면서 우리가 싸우는 광경을 한 눈 팔지말고 잘 관찰하고 있어야 되오."
"그 다음은요?"
"우리의 싸움은 내일 최종 승부를 가리는 치열만 싸움이 될것이오. 우리는 엎지락 뒤치락 싸울것인데 내가 잠기면 청룡이 떠오르고 청룡이 잠기면 내가 떠오를 것이오."
"그런데요?"
"그런데, 잠겼다 떴다 하는 속도가 하두 빨라서 화살에 견주어도 틀림이 없을 것이오. 그러니 젊은이는 나무 뒤에 숨어있다가 내가 떠오르면 나를 향하여 화살을 날려야 하오?"
"그렇게 빠릅니까?"
"그렇소. 만일 청룡이 떠오를 때 활을 쏘게 되면 내가 맞아 죽게 되니 젊은이는 명심하고 반드시 내가 떠오를 때 쏘아야 하오."
"알겠습니다. "
"그럼 부탁하오."
이렇게 말한 황룡은 사라져갔다. 젊은이가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자기는 잠자리에 옷을 벗은 채 누워있었고 머리맡에도 내일 길떠날 보따리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
젊은이는 다시 잠을 청했지만 잠이 올리가 없었다. 두 눈이 더 또렷해지면서아까 노인이 한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내가 떠오를 때 쏘아야 하오, 만일 청룡이 떠오를때 쏘면 내가 죽게되니 명심하시오."
젊은이는 기필코 청룡을 쏘아 바다를 살리고 이웃에게 도움을 주어야겠다고 다짐하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다음 날, 젊은이는 아침 일찌기 활과 화살을 준비하여 산에 올랐다. 젊은이는 노인이 일러 준대로 나무 뒤에 숨어 바다를 살펴보았다. 바다는 검푸르게 변하여 있으며 그동안 두 용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었는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루 동안의 휴전은 너무 짧았다 겨우 하룻동안 잔잔하던 바다는 서서히 요동하기 시작했다. 다시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북쪽에서부터 청룡이 푸른빛을 번득이며 달려들었다. 하루를 쉬었다가 싸우는 때문인지 그들이 지르는 소리가 바다를 흔들었다.
두마리 용의 꼬리가 흔들릴 때마다 파도가 산처럼 일었고 입에서 뿜어내는 열기는 바다를 들끓게 했다 그 싸움은 가이 승부를 점칠 수 없는 싸움이었다.
젊은이는 이 광경을 숨을 죽이고 바라보면서 청룡에 대한 미움이 복받쳐 올랐다. 젊은이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는 등에 짊어진 활을 만지며 기회만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두 용이 엉크러져 싸웠다 떴다 잠겼다 하며 싸우고 있었다. 꿈에 노인이 말한 그대로였다. 젊은이는 활에 살을 재고 겨누었다. 그때 청룡이 떠올랐다.
젊은이의 눈에서 광채가 번득이며 소리쳤다.
"이 못된 놈의 청룡아!"
아아! 그러나 이 젊은이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황룡이 그렇게 당부하던 소리도 까맣게 잊고 말았다. 청룡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젊은이의 이성을 빼앗아가고 침착과 분별을 잃게 했다.
보기좋게 날아간 화살은 황룡의 등을 꿰뚫고 말았다. 황룡의 등에서 검붉은 피가 솟구치더니 천지를 흔드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 황룡은 축 늘어졌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아뿔싸 ! "
이 광경을 본 젊은이는 땅에 털석 주저앉았다. 그는 금방 울음이라도 터트릴 듯 머리를 쥐어짜더니 활을 잡고 꺾어 동댕이치는 것이었다.
"내 이게 무슨 실수람, 무슨 면목으로 동네 사람들을 만나고 무슨 얼굴로 과거를 보러간담, 부끄럽구나. 내 수양이 덜된 탓이야. 이런 상태로 과거에 급제한들 무엇에 쓰겠나. 차라리 포기하자."
젊은이는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한 순간의 실수가 인재를 수렁에 가라앉게 하고 만 것이다. 그뿐인가 바다를 죽게하고 만것이다.
얼마후 사람들은 산속에서 풀뿌리를 캐먹으며 숨어사는 젊은이를 발견하고 마을로 내려가기를 권했으나 부끄럽다고 하면서 끝내 내려오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은 후, 학암포 앞바다와 내리 앞바다에는 조기떼가 사라겼고 대신연평도 바다에는 조기가 많이 잡혔는데 사람들은 청릉룡 조기떼를 잡아먹은 때문이라고 여겻고 또 연평도 바다에 조기가 많은 것은 학암포에서 쫓겨간 조기들이 그곳에 모여 살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 후로 젊은 무사가 숨어살던 고개를「숨은고개」라 이름지어 불렀다 한다 지금은 이 숨은고개에 올라가 사방을 살펴보면 주위에는 산업의 현장으로 탈바꿈 되어가고 있고 잔잔하게 전해오는 이 숨은고개의 전설마저 산업현장의 요란한 소음이 뒤흔들어 놓아 자칫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앞서고 있다.
이 마을은 이원면 내리에 있는데 옛부터 세가지 의미가 담긴 전설과 실화가 있어 이에 적합한 한자상의 표기는 사목, 까목(司牧), 사목(巳目) 등 각기 해석을 달리하고 있다.
첫째, 사목(沙목)은 한자와 우리말의 합성어로서 대자연의 형태를 상징함인데 이마을의 지형은 양쪽바다 서해와 가로림만 사이에 끼여있어 폭은 좁고 길어 태고적을 거슬러 연상해 볼때 100여미터에 불과한 장고목 같이 잘록지고 양쪽 바다가에는 모래가 쌓여 있다는 데서 붙여진 명칭이 전래된 것이라 하며 또한 지금은 오랜세월 해안이 퇴적되여 약 500미터 넓이의 농경지로 변형 되었으나 서해안에는 백사장이 형성되였는데 마을안의 흐르는 하천물이 이 백사장 한허리를 관통함으로서 자연이 모래 목이 되었으니 역시 사목(沙목)이라는 것이다.
둘째, 사목(司牧)은 말(馬)의 방목장을 경영하던 관리소가 있던 곳이라 하여역사적인 배경을 상징함인데 실제로 그럴사한 곳곳의 지명들이 입증하고 있다.
목장의 출입문이 있었다는 곳을 장문(場門밭)재 이곳 양옆으로 말의 탈주를 방비한 시설로서 양쪽 바다에 맏닿도록 산허리 700미터 거리를 깊이 파고 쌓아올린 구덩이가 원상에 가까울 정도로 역역히 남아 있으며 목장 감시초소가 있었다는 전망좋은 세곳에 후망(侯望)재, 바람쟁이, 바람이재 목군들이 주둔 했다는 곳을 진둔재 활쏘던 터라 해서 진실부리와 관녁터 그리고 목장 총수가 기거한 곳이라 하여 두목(頭目)목이 있으니 옛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실지로 부르고 있을뿐만 아니라 바로 이웃한 관리에 속하는 창말(마을)에 말벅이 곡초 1,800속(束)을 저장하는 창고(174번지) 4칸이 있었다는 서산군지, 대동여지승람 등의 문헌들이 뒷받침하고 있으니 명실상부 사목(沙牧)이라는 것이며
셋째, 사목(巳目)은 144미터의 후망산을 등지고 있는 마을로 풍수설적으로 명당 자리라고 일러왔는데 400여년전 순흥안씨 낙향조 묘가 있는 그 자리가 바로 명당자리여서 후손이 번성하여 세칭 사목안씨라 할만큼 집성촌을 이루었으며 그 명당이란 긴뱀이 개구리를 물고있는 형국이라하는데 어쩌면 그 모양이 그렇게도 흡사한지 후망간 한줄기가 뱀처럼 구불구불 뻗어 내려와 개구리를 물고있는 양턱이며 뱀머리에는 조그마한 산 돌 6개가 드문드문 박혀있고 눈이 있어야할 바로 그 양쪽자리에는 벼가마니만한 산돌이 하나씩 박혀 있으니 이를 상징하여 사목(巳目) 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에 와서 새로운 뜻을 부여하는 사목(伺目)이 근심스럽게 등장한다. 이는 예언적인 결과로서의 사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1989년 이곳 지방도로 확충포장공사로 장고목 같은 낮은 곳을 높다랗게 성토함으로서 윗마을과 아래마을의 농로소통이 단절되였던 것을 1991년 성토된 그곳을 굴처럼 파내여 지하도(굴다리)가 생겨 새로운 명물이 되었는데 이 지하도를 통하여 양쪽마을과 바다를 넘겨다 엿볼수 있는 눈(目)과 같다하여 사목(伺目)이란 뜻을 담긴 또하나의 이름을 붙여 볼만도 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