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면 몽산리(南面 夢山里)에는 문씨(文氏)가 집단으로 10여대를 내려오며 거주하고 있으니 그 가구 수는 10여대를 내려오며 거주하고 있으니 그 가구 수는 무려 100여호에 달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홍성(洪城)에 살고 있던 문씨들이 전란(戰亂)을 피하여 멀리 남면의 해안 근처 어느 숲속에서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꿈속에서 키가 헌칠한 노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여기서부터 어느 방향으로 옮겨가서 그 곳에 집을 짓고, 또 어느 곳에 샘을 파면 반드시 맑은 물이 솟아날 것이라고 하였다. 꿈에서 깨어난 문씨는 현몽한 대로 그 지점에 찾아가 샘을 파니 과연 맑은 물이 솟아났으며 또한 가르쳐준 장소를 찾아가 집을 짓고 생활을 시작하니 가세가 점점 늘어나고 따라서 자손이 번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꿈에서 집터를 얻었다 하여 동네 이름을 몽대(夢垈)라 불렀는데 지금은 몽산리(夢山里)로 불리워지고 있다.
물론 지금도 자연 부락 명칭으로 몽대라 부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같이 지명에는 반드시 그 유래가 있어 흥미를 끌고 있는 것이다.
이 벼락바위는 본군의 남면 달산리 (南面 達山里) 1구의 주래미 마을에 있다. 이 주래미 마을에 들어서면 동구(洞口)맞은 편에 아늑한 곳이 있는데, 여기에 3가구가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이 집 뒤에는 조그마한 야산이 있는데 이 곳엔 소나무 몇 그루가 서 있고 또한 그 곳에는 있지만 잡초가 무성하여 멀리 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이 바위를 벼락바위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이 바이를 벼락바위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주 먼 옛날 이 벼락바위 근처에서 부부와 외동딸 셋이서 단란하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병환으로 어머니가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그후 부녀가 쓸쓸하게 살아오다 아버지는계모를 맞아 들였다.
그런데 이 계모는 일차 출가한데서 실패하였기 때문에 소생의 딸을 하나 데리고 개가 한 것이다. 이렇게 개가하여 온 계모는 자기가 데리고 온 친딸만 사랑하고 팥쥐의 설화를 재연(再演)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같은 편애(偏愛)이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하여지더니. 마침내 그 딸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나물을 채취하자는 구실을 삼아 산으로 유인하였다. 험한 곳으로 유인한 이 악독한 계모는, 흉계를 모른채 열심히 나물을 채취하고 있는 그 딸을 뒤에서 밀어뜨려 추락사(墜落死)하게 하였다. 바로 이때 폭풍우와 더불어 천둥이 요란하게 치더니 산이 갈라지고 나무가 쓰러지면서 계모는 바위로 변하고 말았다. 그 뒤부터 동네 사람들은 이 바위를 벼락바위라 부르게 되었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전래되어오고 있는 것이다.
남면 몽산리 하면 몽산포 해수욕장이 떠오른다. 긴 모래밭이 펼쳐져 있는 해안에는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 적격이다. 경관이 아름다워 절경을 이루고 있는데 탁 트인 망망대해에 옹기종기 떠 있는 섬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풍치가 아닐 수 없다.
오랜 옛날 이야기다. 몽산리에는 인가가 제법 많아서 촌락을 이루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모두 부지런히 바다와 논 밭이ㅔ서 일을 하여 살림이 넉넉한 마을이었다.
어느날, 이 동네 한 젊은이가 바닷가로 낚시를 하러 나갔다가 이상한 물체가 물에 둥둥 떠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물건은 언듯보아 꼭 사람의 모양이었는데 젊은이는 큰 물고기가 아니고 고래의 시체려니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 해변에는 이따금 그와같이 것들이 떠올라 구경거리가 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까이 온 그 물건은 뜻밖에도 돌로 만든 큼직한 부처였다. 젊은이는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니 분명 그것은 돌부처였다. 이것은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무로 만든 것 이라는데는 저으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럴 수가 있는가!"
젊은이가 이상히 여기고 있는 동안 어느새 썰물이 되어 모래밭이 드러났고 물에 떠온 돌부처는 모래밭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젊은이는 부처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는 부처를 손으로 들어보았다. 그러나 돌부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거운 돌덩이가 어떻게 물에 떠왔을까 그게 젊은이로서는 이상했다. 젊은이는 다시 부처를 들어보았다. 매 한가지였다.
젊은이는 이 이상스런 일을 동네로 돌아와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모두 젊은이의 말을 못 믿어 했다.
" 돌부처가 어떻게 물에 뜨나? "
" 자네가 나무로 만든 것을 잘못 본가야. "
" 아닙니다. 그렇게 못 믿으시거든 직접 가 보십시오."
젊은이가 하도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동네 사람들이 바닷가로 몰려갔다. 과연 거기에는 돌부처가 반듯이 누어있었다. 하얀빛을 띄운 돌부처는 크기가 사람의 몸보다 더 커서 굉장히 무거워 보였다.
구경하던 젊은이 한사람이 팔을 걷고 나서며 말했다. 이 젊은이는 동네에서 힘깨나 쓴다고 소문이 나 있는 사람이었다.
" 저 부처가 그렇게 무거운가. 내가 한 번 들어볼까 "
젊은이 몇 사람이 부처에게 다가가 힘을 합하여 들어보았다. 역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별일이구먼 언듯보아 쌀 두 가마 무게 정도로 보이는데 여럿이 들어도 안들리니 도대체 이 부처는 무엇으로 만든게야?"
그때, 뒤쪽에서 구경만 하고 잇던 젊은이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청년은 남보다 몸이 허약해 보였고 힘도 하나도 없어 보였는데 이 청년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내가 한 번 들어볼까?"
그러자 다른 사람드이 까르르 웃었다.
"아니. 이 사람아 우리 대여섯 사람이 들어도 안되는데 자네가 혼자 들어 진작 그만두게."
"그만 둘 때는 그만 두더래도 한 번 들어나 보겠네."
이렇게 말한 청년은 돌부처 앞에 가서 가만히 들어 올렸다.
마치 가벼운 젖가락을 들어 올리는 모습이었다. 이 모양을 보자 사람들의 눈이 둥그래졌다. 참으로 이상한일이 아닐 수 없었다. 수 천근이나 될법한 그 부처가 가장 약한 젊은이가 가볍게 들어올린다는 것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저 사람이 요술을 부리나?"
사람들이 그저 멍하니 서 있는데 젊은이는 부처를 안아 모래밭 밖으로 가져다 놓았다. 그러면 이 젊은이는 어떤 사람인가
부처를 가볍게 들어올린 이 젊은이는 이 동네에서도 효자로 이름이 나 있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이 청년은 마음이 착하고 너그럽고 효성이 지극하며 어느 하나 흠잡을데 없는 모범 청년이었다. 이 청년이 밤에 꿈을 꾸었는데 꿈의 상황이 지금과 똑같은 상황이어서 자기가 꿈에 부처를 들어본 대로 재연해 본 것뿐이었다.
"부처도 효자를 알아보는구나 이 부처는 영험이 있는 부처야 동네로 모셔다가 놓아야겠다."
나이 많은 이 마을 촌장이 이렇게 말하며 젊은이들에게 부처를 동네로 옮기도록 당부하였다.
촌장의지시대로 젊은이들은 다시 부처를 들고 가려고 다시 들어보았지만 다른 사람의 힘으로는 막무가내였다.
"자네가 다시 들어야겠네."
이렇게 해서 효자가 다시 부처를 어깨에 메고 동네를 향하여 걸었다. 그 뒤를 동네 사람들이 따랐다.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던 촌장이 말했다.
"부처를 모시자면 사찰을 건축해야해. 우리 마을 청계산 소목골이 절터로는 제격이야. 거기다가 절을 세우세."
촌장의 말대로 젊은이가 돌부처를 어깨에 메고 사람들은 그 뒤를 따랐다. 사람들은 부처의 뒤를 따르면서도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고 묵묵히 따라갔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 부처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했다. 정말로 영험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연일까 하지만 아무도 들지 못하던 부처를 효자가 들고 지금 동네로 가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예삿일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부처를 앞에 모시고 가는터라 해여 말을 잘못하고 행동을 잘못하여 부처의 노여움이라도 사는 날에는 무슨 재앙이 내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일을 다문 것이다.
청계산 소목골까지는 한 참 가야 한다. 어느덧 산그늘이 내리고 있었다. 부처를 메고가는 청년의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바다에서 불러오는 사람이 씻어주고 있었다. 사람들이 거의 소목골까지 왔을때였다.
"좀 쉬었다 가야겠어요."
"무거운가?"
"예. 갑자기 힘이 빠지면서 다릭 떨려 한발자국도 옮길수가 없네요.'
"그렇다면 쉬어가세."
젊은이는 부처를 산비탈에 있는 밭두둑에 내려놓고 땀을 닦았다. 사람들도 그늘으 찾아 쉬었다. 그렇게 담배 한 대 거리쯤의 시간을 쉬고는 다시 갈려고 일어섰다.
"자, 조금만 더 가면 되네 다시 부처님을 메게나."
촌장의 말에 효자 젊은이가 부처를 들어 어깨에 메려 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지금까지 가볍게 메고 왔던 부처가 껌짝도 하지 않는 것이다. 젊은이가 아마루 힘을 썼지만 부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왜그러는가"
"이상한데요"
"뭐가?"
"꼼짝도 안해요"
젊은이들이 부처 앞으로 우루루 몰려갔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들어보자"
그러나 어림도 없었다. 이 광경을 찬찬히 보고 있던 촌장이 다시 말했다.
"그만들 두게 여기가 바로 절을 지을 자리야, 이 부처님은 지금 그것을 말해주고 있어. 그러니 이 밭에다 터를 닦고 절을 세워 부처를 모시세."
이렇게 하여 다음날부터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절을 짓기 시작했다. 절은 여러 날이 걸려 지어졌다. 그리고는 부처를 절 중앙에 있는 방에 모셔놓았다. 부처를 방으로 옮길때는 효자청년이 혼자 들어 방으로 옮겼는데 아무 까다로움이 없이 가볍게 옮길 수가 있어서 보는 사람들에게 부처의 영험을 증명해 보였다.
이렇게 되자 동네 사람들은 무슨 궂은일만 있으면 부처에게 소원을 빌었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와서 절을 하고 기도하면 영낙없이 자식을 얻을 수가 있었다.
절을 지었으니 스님이 살았음은 물론이요 그 수도 여러 사람이었고 부처의 영험을 얻으려고 인근 근처에서 모여드는 사람들로성시를 이루었다.
이 절의 이름이 죽사(竹寺)라고 했다하는데 죽사라는 이름의 뜻과 유래는 아는 바 없다.
세월이 여러 해가 흘렀다. 죽사의 부처는 그 영험은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가서 이 절은 점점 유명해졌다.
그러던 어느 해, 이 죽사에 도둑이 들었다. 모두 잠든 사이에 도둑이 든 것이다. 도둑은 절 구석구석을 살피며 가져갈만한 물건이 없는가 더듬었다. 하지만 신성한 절 안에 값나갈 물건이 있을리 없다. 방마다 걸려 있다는 것이란 주으이 장삼과 그리고 그들의 꾀죄죄한 일상의용품들이었다. 도둑이 가져가봐야 아무 쓸모없는 물건 분이었다.
"젠장, 아무리 절간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궁할 수가 없군, 듣는 말로는 사람이 많이 모인다기에 부저절인줄 알았더니 이게 뭐람."
도둑은 투덜거리더니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 역시 값나갈만한 물건이 있을 리가 없었다. 도둑은 구석구석 살피다가 부뚜막에 걸려있는 가마솥(밥솥)을 보았다. 이 가마솥은 절간의 식구들의 취사용으로 걸려있는 것이다.
"이것이라도 가져가자."
도둑은 가마솥을 번쩍 들고 문을 나왔다. 그리고 누가 볼세라 조심조심 문을 닫고는 산길의 나 있는 쪽으로 도망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누군가가 뒤에서 자꾸 따라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한발자욱을 떼어놓고 뒤를 돌아다 보고 또 한발자욱을 떼어놓고 뒤를 돌아다 보고 하면서 걸었다. 하지만 뒤를 돌아다 볼 때마다 따라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왜 자꾸 겁을 먹는걸까. 아무도 따라오는 사람이 없는데"
도둑운 이런 생각을 하며 솥이 무거워 쉬어가기로 했다. 솥이 무거운 것은 당여했다. 여러 식구의 밥을 큼직한, 그리고 무쇠러 만들었으니 힘이 센 도둑이에 들 수 있었지 힘이 약한 사람이면 즐 수도 없는 솥이었다.
"쉬었다 가자"
도둑은 솥을 내려놓고 땀을 닦았다. 그리고 잠시 앉아 있으려니 졸음이 왔다. 무거운 것을 메고 산길을 달렸으니 피곤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도둑은 잠을 이기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얼마쯤 잤을까 도둑이 눈을 떠보니 동녘이 밝아올 무렵이였다. 새벽이 가까이온 것이다. 도둑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물어물 하다가는 잡힉 만다는생각에 그는 부시시 일어나 솥을 들었다.
"이번에는 머리에 이고 가자,"
도둑은 솥을 머리에 이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절 안으로 옮겨진다.
마침 염불을 하기 위하여 주지승이 일찍 일어났다. 아직 먼동이 틀려면 조금은 남은 새벽이었다. 주지승은 세수를 하기 위하여 두멍(큰 물항아리)의 물을 바가지로 뜨고 있었다. 그런데 웬 녀석이 솥을 머리에 이고 부엌안을 빙빙 돌고 있는 것이었다. 그 도둑은 주지승이 들어온 것도 모르고 빙빙 돌기만 했다.
주지승은 섬듯한 생가에 몸을 낮추고 가만히 살펴보니 처음보는 위인이 부뚜막에 걸려있는 가마솥을 머리에 이고 돌고 있음을 직감하고 틀림없는 도둑이라 생각했다. 주지승은 가만히 나와서 자고 있는 중들을 깨웠다.
"수상한 자가 있으니 잡도록 하자."
스님들은 잠결인데도 도둑이 들어왔다는 소리에 뒷칸에 쌓여놓은 장작더미에서 몽둥이를 하나씩을 들고 우루루 부엌으로 들어갔다.
"웬 놈이냐"
"그 솥을 내려놓지 못할까?"
스님들이 소리치자 그제서야 솥을 머리에 이고 빙빙 돌던 도둑이 발길을 멈췄다. 도둑은 이 뜻하지 않은 스님들의 출현에 놀라서 솥을 땅에 떨어뜨렸다. 이렇게 되자 스님들은 몰려들어 도둑을 새끼로 포승했다.
도둑은 포승을 다하면서도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자기는 지금 산길을 겉고 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조금만 내려가면 몽산리를 벗어나서 읍내의 장에다 솥을 팔아버리려고 부지런히 걷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자기가 아직도 부엌 안에서 솥을 이고 빙빙 돌고 있었으니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도둑은 잡힌 것은 잡힌 것이고 이 기막힌 사건에 그저 저승을 헤메는 듯 했고 꿈속을 헤매는 듯 했다.
"이놈아, 그래 어디 가서 도둑질을 못해서 아무 것도 없는 절에 들어와 솥을 빼 가지고 돌고 했느냐?"
"그리고 도둑질을 했으면 달아날 일이지 왜 솥은 이고 빙빙 돌고 있는 거야?"
그제서야 도둑은 어렴푸시 깨닫는 박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자기가 경험한 모두를 이야기했다.
"나는 지금까지 산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다가 소나무 밑에서 잠도 잤고 풀밭 위에서 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모두 환상이었나 봅니다. "
이 소리를 들은 중들은 그 모두가 부처님의 영함에 의하여 도둑이 부엌을 빙빙 돌면서도 산길을 겉는 것이라 착각하도록 만들었으며 절의 솥을 도둑으로부터 빼앗아 놓았다고 믿었다.
"영험하신 부처님!"
"나무아비타불"
스님들은 새삼 부처 앞에 엎드려 제를 올렸다.
도둑은 볼기 세대를 맞는 것으로 벌을 대신하고 풀려났는데 나중에 이 도둑은 착한 사람이 되어 많은 사람을 도와주었고 늙으막에 중이 되어 죽사를 위해 봉사했다는 이야기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죽사도 다 황폐해져 허물어졌고 돌부처도 어디로 갔는지 전설만이 전해 내려오던 중. 1986년 몽산리에 사는 문제원씨에 의하여 이 돌부처가 어느 집 밭머리에 묻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됐고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다하여 감정한 결과 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지방문화재 122호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아무리 전설이라고는 하지만 나쁜 일을 하면 언젠가는 그 벌을 받는다는 부처의 교훈이 지금도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남면 몽산리 앞 바다에는「떡바위」라는 바위가 있다. 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가까이 보이는 이 바위는 물이 들어오면 물 속에 잠겼다가 물이 나가면 몸둥이를 들어내 보이는데 바위가 커서 물위로 들어 나는 부분만 해도 여러 평이 된다. 바위 위에서 평평하게 넓어 마치 운동장을 연상케 하는데 이 바위에는 굴이 많이 있고 고둥도 많아서 몽산리 사람들은 물만 나가면 이 바위에 가서 굴따기와 고둥따기를 한다.
바위가 바다 가운데 있고 또 물이 나가야 바위가 드러나는 까닭에 이 바위로 굴 따러 갈 때는 물때를 가려 배를 타고 가야 하는데 동네 아낙네들이 한배 가득히 타고 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어느 봄날, 이날도 물때가 좋아 몽산리 아낙들은 낚시 배(어선)하나를 대절하여 이 바위로 갔다. 썰물 따라 바위가 점점 드러나자 아낙들은 굴 따기를 서둘렀다.
그런데 배를 몰고 온 뱃사공이 배에 오르면서 굴 따는 여인들을 향해 소리치는 것이었다.
"굴 많이 딱 있어요. 나는 그 동안 가아도에나 다녀와야겠어요."
"거아도에는 왜요?"
"거아도에 사는 친척집에 결혼식이 있어요. 그래서 갔다오려는 거요."
"그럼 들 물이 나기 전에 와야 해요. 괜히 늦어서 에타게 하지말구요."
"그런 염려는 마셔요, 내 잔치 집에 가서 떡이나 한 보따리 싸오리다."
"그러겠어요. 그 때쯤은 배도 고플 텐데 많이 싸와요"
사공은 떡을 많이 싸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거아도로 갔다.
아낙들은 정신없이 굴을 따고 고둥을 땄다. 들 물이 밀려오기 전에 굴 따는 작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많을 굴을 따기 위해서는 한눈 팔 사이가 없었다.
아낙들의 바구니가 그득그득 차 오를 때쯤 들 물이 슬금슬금 밀려왔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아낙네들은 바구니를 챙기고 굴 따는 장비를 챙기고 하여 돌아갈 준비를 서둘렀다.
"자, 모두 바위위로 모이라구."
벌써 들물인가?"
"들물이 뭐야, 벌써 바위가 반은 쩠어."
"그럼 가야지"
아낙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바위 위로 올라왔다. 그런데 배가 오지 않는 것이다. 물은 점점 불어나서 머지않아 바위를 덮을 것 같았다. 바위에 있는 아낙들은 초조했다.
"아니 배가 왜 여태 안오지?"
" 물이 벌써 이렇게 불어났는데 이 양반 뭣하고 있는게야."
"거아도가 멀지도 않은데 웬 시간이 이렇게 걸려."
바위에 있는 사람들은 발을 구르며 배를 기다리지만 이떻게 된일인지 배는 보이지 않았다.
요즈음 처럼 배가 많고 또 기계배도 있는 때라면 가까운 곳에 있는 삶들을 쉽게 발견할 수도 있고 구조에도 어려움이 없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쉬운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모두 여인들이니 헤음을 칠 줄 모르는 것은 당연하고 배가 없으면 이들은 살아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배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여인들의 눈이 거아도 쪽으로 쏠려 있지만 시야로 배위 모습은 들어오지 않았다. 무슨 사고가 일어나나 모양이다.
"배가 어떻게 된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어쩌지."
이러는 사이에 물은 바위를 덮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목까지 밀려든 바닷물은 사납게 불어나 잠시 후, 허리까지 물이 올라왔다. 그러나 배는 보이지 않았다.
거아도에 갔던 사공은 잔치 집에서 정신없이 놀다보니 어느새 들 물이 들 때가 된 것을 알고 급히 일어나 배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는 정신없이 배를 몰았지만 그 때는 이미 바위가 물에 잠기기 시작할 때였다. 사공은 죽을힘을 다하여 노를 저었지만 마음만 급했지 배는 더디게 나갔다.
잔치 집에서 마신 몇 잔의 술, 그것이 화근이었다. 술기운이 몸에 펴지자 사공은 정신이 몽롱하고 팔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큰일인데!"
"이러다가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아닐까 빨리 가자."
뱃사공은 중요한 자신의 책임도 잊고 술을 마신 것을 후회하며 노를 저었지만 배는 거북이처럼 느렸다.
한편, 바위에 있던 여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치마폭을 뜯어 서로를 엮어 묶었다. 시체가 되더라도 떨어지지 말고 같이 다니자는 셈이었다. 그렇게 묶여 있는 사나운 파도는 한순간에 삼키고 말았다.
사공이 사력을 다하여 바위에 돌아왔을 때는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갈매기 떼들이 물에 잠긴 바위를 빙빙 돌며 끼욱끼욱 울고 있었다.
"아, 이게 무슨 실수람!"
뱃사공은 탄식을 하고 뱃머리를 돌려 어디런가 사라졌다. 그 뒷얘기로는 사공도 물에 뛰어들었다는 얘기다.
그후, 사람들은 이 바위를「떡바위」라고 이름했다. 그것은 떡을 받으로 갔다가 사람을 죽게 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지금도 물이 나가면 드러나는 이 떡바위는 한사람의 실수가 얼마나 큰 일을 저지르는가를 묵묵히 교훈하며 여전히 굴 따는 아낙들도 친하게 지낸다.
갈매기가 유난히 많은 남면 앞 바다에는 들 물이 들 때면 떡바위 주위에서 그 옛날은 생각하는지 갈매기 떼가 모여들어 운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