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성(姓)이 중국(中國)의 영향(影響)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성명(姓名)의 구성(構成)과 그 개념(槪念)에 있어서는 매우 특이하고 고유한 점이 많은 것을 엿볼 수 있다. 즉 우리나라의 인명(人名)을 살펴보면, 성(姓)과 본관(本貫)은 가문(家門)을, 명(名)은 가문의 대수(代數)를 나타내는 항열(行列)과 개인을 구별하는 자(字)로 구성되어 있어 개인 구별은 물론 가문계대(家門系代)까지 나타나 있으므로 세계에서 그 유례(類例)를 찾아보기 힘든 특수(特殊)한 성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의 성은 남계(男系)의 혈족(血族)을 표시하는 칭호(稱號)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의 성(姓)은 가족 전체(家族全體)를 대표하는 공칭(共稱)이 아니라, 본디의 가계(家系) 그 자체(自體)를 본위(本位)로 한 칭호이다. 그러므로 소속(所屬)된 가정(家庭)이 변동(變動)되더라도 즉 어떤 사람이 결혼(結婚)하여 갑(甲)의 집에서 을(乙)의 집에 입적(入籍)을 하는 경우에도 성(姓)은 변하지 않는다. 남편(男便)이 이성(李姓)인데도 아내는 최성(崔姓)이고 며느리는 박성(朴姓)이라는 식이다. 그런데, 대부분(大部分)의 다른 나라에서는 성(姓)을 다만 가정(家庭)을 상징(象徵)하는 것으로서 가령 남편(男便) 성이 김(金)이라면 아내의 성도 남편의 성을 따라 김성(金姓)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이 같은 성씨제도(姓氏制度)는 가족(家族)이 사회의 근간(根幹)으로 되어 있는 경우에는 출가(出嫁)하더라도 혈족 관념상(血族觀念上) 자기의 생족(生族)을 표시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며, 이것이 또한 성씨(姓氏) 본래의 기능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성씨(姓氏)는 다만 사람과 혈통(血統)의 표시에 끝나지 않고 그 가족제도는 사회조직의 기조(基調)를 이루어 사상·문화·도덕·관습의 근본이 되어 있는 극히 중요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또 성씨제도(姓氏制度)의 하나인 사성(賜姓)은 국가에·공로가 있는 사람이나 귀화인에게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하간 우리나라의 성씨제도를 오늘날의 현대적인 자유 민주주의 체제상에서 고찰하여볼 때 여자가 출가한 뒤에도 혈족고유의 자기 성이 남편의 성에 따라 개성(改姓)되지 않고 그대로 보지(保持)할 수 있다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기본권을 존중한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에서 생성된 것으로서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시원국(始源國)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