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의 고종(高宗) 9년(1872)과 광무(光武) 3년(1899)에 간행된 태안읍지(泰安邑誌)에 따르면 오늘의 원북면은 원이도면(遠二導面)·북이도면(北二導面)·북일도면(北一導面)의 일부로 이루어졌었는데, 뒤에 원이도면이 원이면(遠二面)·북이도면이 북이면(北二面)으로 각각 개칭되었다. 따라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원이면의 원(遠)과 북이면의 북(北)자를 따서 합성 약칭(合成略稱)으로 원북면(遠北面)이라 하여 서산군에 편입되어 70여년 내려오다, 지난 1989년 1월 1일 법률 제4250호에 따라 태안군이 복군(復郡)됨으로서, 원북면은 다시 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늘의 원북면에 딸린 법정리수(法定里數)는 모두 11개 리인데, 그 명칭은 앞에서 수록한바와 같다.
이 반계리는 본래 북이도면·북이면·원이도면·원이면의 관할지(管轉地)었는데, 지난 1914년의 행정 구역(行政區域)개편 때에 반계리·상계리(上溪里)·상이리(上狸里)·상리(上里·桑里)·정포리(碇浦里) 등을 반계리에 폐합(廢合)시켜 리명(里名)을 그대로 반계리라 하여 서산군 원북면에 편입한 후 70여년 내려오다 지난 1989년 1월 1일 법률 제4050호에 따라 태안군이 복군(復郡)됨으로서 반계리는 태안군 원북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방갈리는 본래 태안군 북이도면(北二導面)위 관할지였는데, 이 북이도면이 다시 1914년의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방축리(防築里)·관갈리(貫葛里)·민어포리(民漁浦里) 등을 합병하여 방갈리라 명명하고 서산군 원북면에 편입되어 70여년 내려 왔는데, 지난 1989년 1월 1일 법률 제4050호에 따라 태안군이 복군(復郡) 됨으로서, 방갈리는 다시 태안군 원북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방갈리란 명칭은 방축리의 방(防)자와 관갈리의 갈(葛)자를 따서 지은 이름인데, 현재 방갈리는 2구로 나누어져 있다.
황촌리는 본래 태안군 북이도면(北二導面)의 관할 지역이었는데, 이 북이도면이 북이면(北二面)으로 개칭됨에 따라 이에 편입되었다가 다시 1914년의 행정구역(行政區역) 폐합 때에 황곡리(黃谷里)와 항촌리(項村里)를 병합하여 이를 황촌리라 명명하고 서산군 원북면에 편입되어 내려오다, 지난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됨으로서 황촌리는 다시 태안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황촌리」란 황곡리의 황(黃)자와 항촌리의 촌(村)자를 따서 지은 이름인데, 현재 황촌리는 2개 구로 나누어져 있다.
이곡리는 본래 태안군 북이도면(北二導面)의 관할 지역이었는데, 이 북이도면이 북이면(北二面)으로 개칭(改稱)됨에 따라 이에 편입되었다가 다시 1914년의 행정 구역 폐합 때에 연곡리(蓮谷里)·송곡리(松谷里) 그리고 산이리(酸梨里)를 병합하여 리명(里名)을 이곡리(梨谷里)라 명명하고 서산군 원북면에 편입되었는데, 지난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됨으로서 이곡리는 다시 태안군 원북면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곡리라 한 것은 산이리의 이(梨)자와 연곡리의 곡(谷)자를 따서 붙인 이름으로서 현재 이곡리는 2개 구로 나누어져 있다.
신두리는 본래 태안군 북이도면(北二導面)의 관할 지역이었는데, 이 북이도면이 북이면(北二面)으로 개칭됨에 따라, 이에 편입되었다가 다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 때에 신곶리(薪串里)·두응리(斗응里)·수철리(水鐵里) 그리고 정포리(碇浦里)의 일부를 병합하여 리명(里名)을 신두리라 명명하고, 서산군 원북면에 편입시켰는데, 지난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됨으로서 신두리는 다시 태안군 원북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이 신두리란 명칭은 신곶리의 신(薪)자와 두응리의 두(斗)자를 따서 지은 이름인데, 현재 신두리는 3개 구로 나뉘어져 있다.
동해리는 본래 태안군 북이도면(北二導面)의 관할 지역이었는데, 이 북이도면이 북이면(北二面)으로 개칭(改稱)됨에 따라 이에 편입되었다가, 다시 1914년의 행정 구역 폐합 때에 동해리(東海里)·거로리(巨老里)·원동리(院洞里) 등을 병합하여 그대로 동해리라 해서 서산군 원북면에 편입시켰는데, 지난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됨으로서 동해리는 다시 태안군 원북면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동해리는 2개 구로 분리되어 있다.
이 청산리는 본래 태안군 북일도면의 관할 지역이었는데, 이 북일도면이 북일면으로 개칭됨에 따라 이에 편입되었다가, 다시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 때에 외청산리(外靑山里)·내청산리(內靑山里)·이화리(梨花里)·흑점리(黑店里)·갈두리(葛順里) 일부를 청산리에 병합하고 리명(里名)을 그대로 청산리라 하여 서산군 이북면에 편입시켰다.
그후 1973년 7월 1일 법령 제2765호에 따라 이북면에서 원북면에 편입되어 내려오다, 지난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됨으로서 청산리는 다시 태안군의 원북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청산리(靑山里)는 다른 마을에 비해 산이 많은 편인데, 마을이 주로 푸른 산밑에 형성되었으므로 청산리라고 명명한 것이다.
마산리는 본래 태안군 북일도면(北一導面)의 관할 지역이었는데, 이 북일도면이 북일면(北一面)으로 개칭됨에 다라 이에 편입되었다가 다시 1914년의 행정 구역 폐합 대에 마산리·하이리(下狸里)·중이리(中狸里)·사증리(思曾里)·태포리(笞浦里) 일부를 병합하여 그대로 마산리라 해서 서산군 이북면에 편입시켜 최근까지 내려오다, 지난 1973년 7월 1일무로 법령 제2596호에 따라 이북면에서 원북면에 편입되었는데 지난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됨으로서 마산리는 다시 태안군의 원북면 관할하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기리는 본래 태안군 북이도면(北二導面)의 관할 지역이었는데, 이 북이도면이 북이면(北二面)으로 개칭됨에 따라 이에 편입되었다가, 다시 1914년의 행정 구역 폐합 때에 대기리(大基里)·대정리(大井里)·석우리(石隅里)·소정리(小亭里)·.신안리(新安里)·신사리(薪寺里)·안파리(安坡里) 그리고 북일면(北一面)의 월은리(月隱里)·보정리(保坪里) 등을 병합하여 그대로 대기리(大基里)라 하여 서산군 원북면에 편입시켰는데, 지난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됨으로서 대기리는 다시 태안군의 원북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양산리는 본래 태안군 원이면의 관할 지역이었는데,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 때에 흑점리(黑店里)·풍천리(楓川里)·양계리(陽溪里)·삼계리(三溪里)·산저리(山底里)·정이리(正伊里)·추동리(楸洞里)·삼봉리(三峰里) 등의 일부를 양산리에 합쳐서 그대로 양산리라 하여 서산군 원북면에 편입되어 내려오다. 지난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됨으로서 양산리는 다시 태안군의 원북면에 편입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