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면은 현재 태안군의 관할 지역으로서 9개 법정리(法定里)와 22개 행정리(行政里) 그리고 85개의 반(班)으로 형성되어 있다.
일본 강점기(日本强占期)었던 지난 1914년 그들이 통치 수단의 일환으로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면서 원일면(遠一面)·원이면(遠二面)·소근면(所斤面)·근서면(近西面)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면명(面名)을 다시 소원면(所遠面)이라 개칭(改稱)하고 서산군(瑞山郡)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시켰다.
따라서 소원(所遠)이란 지명 유래(地名由來)를 살펴보면 위의 소근면의 소(所)와 원일면의 원(遠)자를 따서 합성약칭(合成略稱)으로 소원(所遠)이라 명명하였음으로 지명으로서의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위의 4개 면의 관할하에 있던 31개리를 통폐합(統廢合)하여 리명(里名)을 다시 시목리(枾木里)·법산리(法山里)·신덕리(新德里)·영전리(令田里)·소근리(所斤里)·의항리(蟻項里)·모항리·(茅項里)·파도리(波濤里)·송현리(松峴里) 등 9개 리로 축소시켜 소원면에 편입된 채 75년간 내려오다 지난 1989년 태안군이 복군(復郡)됨에 따라 소원면은 다시 태안군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시목리는 본래 원일면(遠一面)의 관할 지역이었는데, 이 마을에 감나무가 많이 식재(植栽)되어 감의 생산량이 많았으므로, 동네 이름을 그대로 감나무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감나무골이 뒤에 지명의 한자 표기(漢字表記)에 따라 시목리(발木里) 또는 시목동(枾木洞)이라 했는데, 지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원일면의 석문리(石門里)·와야리(瓦也里)·유득리(柳得里)·백교리(白橋里)·괴목리(槐木里)·추동리(樞洞里)·석현리(石峴里)와 근서면(近西面)의 마금리(磨金里) 일부 지역을 합쳐서 리명(里名)을 시목리라 하여 서산군 소원면에, 편입 입시켰다.
소원면에 편입된 시목리는 75년간 내려오다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의 복군에 의해 시목리는 다시 태안군의 관할 지역으로 개편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법산리는 현재 소원면 관할의 9개 법정리(法定里) 중의 하나인데, 본래는 원일면(遠一面)의 관할 지역이었다.
지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원일면의 법현리(法峴里)·등대리(登垈里)·고좌리(高佐里) 등을 법산리(法山里)에 통폐합(統廢合)시켜 리명(里名)을 그대로 법산리라 하여 서산군에 편입시켜 75년 동안 내려오다, 지난 1989년 1월 1일에 태안군이 복군됨에 따라 법산리는 다시 태안군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법산(法山)의 유래를 살펴보면, 이 법산은 등대산(登垈山)의 이칭(異稱)인데, 등대산은 법산리의 중앙부에 자리한 가장 높은 산(125m)으로서 법산리의 진산(鎭山)이기도 하다. 진산인 등대산은 명산으로서 일찍 가람(伽藍)을 설치하고 법사(法事)를 펴고 있었으므로, 명실 상부(名實相符)하게 산의 명칭을 법산(法山)이라 호칭하게 된 것이다.
또한 법산을 달리 등대산(登垈山)이라 부르는 것은, 이 마을에서 제일 높은 산이므로 그대로 붙인 이름이다. 이 등(豈)자는「오르다」의 뜻 외에「높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와같이 법산리는 법산 밑에서 형성된 마을이므로 이에 연유하여 편의상 그대로 법산리(法山里)라 명명한 것이다.
신덕리는 현재 소원면 관할의 9개 법정리(法定里) 중의 하나인데, 본래는 원일면(遠一面)의 관할 지역이었다.
지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원일면 관할의 산지리(山芝里)·삼간리(三間里)·중방리(中方里) 등을 폐합(廢合)하여 리명(里名)을 다시 신덕리(新德里)라 개칭(改稱)하고 서산군에 편입시켰다.
이같이 서산군 소원면에 편입된 신덕리는 75년간 내려오다, 지난 1989년 1월 1일에 태안군이 복군(復郡)됨에 따라 신덕리는 다시 태안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신덕리의 유래를 살펴보면, 다른 리명(里名)처럼 여러 리동(里洞)을 병합하여 합성 약칭(合成略稱)으로 명명된 명칭이 아니고, 종래의 리명(里名)과는 전혀 무관한 새로운 명칭으로 개칭(改稱)한 것이 이 신덕리(新德里)의 특징이다.
신덕(新德)이란 3개리를 합쳐 새롭게 출발하는 마을이므로, 명실 상부하게 새로운 덕스러운 마을이 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영전리는 현재 소원면 관할의 9개 법정리(法定里) 중의 하나인데, 본래는 원이면(遠二面)의 관할 지역에 속해 있었다.
지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원이면의 영전리와 상리(上里) 그리고 소근면(所斤面)의 중미리(中味里) 등을 통폐합(統廢合)하고 리명(里名)을 영전리(令田里)라 하여 서산군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시켰다. 서산군에 편입된 영전리는 75년간 내려오다, 지난 1989년 1윌 1일에 태안군이 복군됨으로 인하여, 다시 태안군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이 영전(令田)의 유래를 살펴보면, 본래 역전(驛田)이라 하였는데 뒤에 영전(令田)으로 바퀴어 불리워지고 있다. 역전(繹田)이란 조선조(朝鮮朝) 시대의 공전(公田)의 하나로서 역참(驛站)의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정부에서 나누어 준 토지(土地)를 말하는 것이다. 또한 이웃 마을인 소근리에 원(院)이 있었음으로 미루어 보아 역(驛)이 있었음이 확실하고, 따라서 이 역에 딸린 역전(驛田)이 있었음은 명약 관화(明若觀火)한 것이다.
소근리는 현재 소원면 관할의 9개 법정리(法定里) 중의 하나인데, 본래는 소근면(所斤面)과 원이면(遠二面)의 관할 지역이었다.
지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원이면의 원동(院洞) 일부 지역과 소근면의 소근리와 율도리(栗島里)를 통폐합(統廢合)하고, 리명(里名)을 소근리(所斤里)라 하여 서산군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시켰다.
서산군에 편입된 소근리는 75년간 내려오다, 지난 1989년 1월 1일에 태안군이 복군(復郡)됨으로 인하여 다시 태안군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의항리는 현재 소원면 관할의 9개 법정리(法定里) 중의 하나인데, 본래는 소근면의 관할 지역에 편입되어 있었다.
지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다라 의항리에 막동리(幕洞里)를 합쳐서 리명 (里名)을 그대로 의항리라 하여 서산군에 편입시켰다. 이같이 서산군에 편입된 의항리는 75년간 내려오다 지난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됨에 따라 의항리는 다시 태안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의항(蟻項)에 대한 유래를 살펴보면, 이곳의 지형이 마치 개미의 목처럼 잘록하게 생겼다 하여 그대로 「개미목말」이라 했는데, 뒤에 말이 탈락된채 개미목만으로 마을의 명칭이 되었고, 또한 지명의 한역(漢譯)에 따라 의항(蟻項)이 되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개미목」이 개미기로 와음화(訛音化) 되는가 하면, 개미에서「미」가 생략된채 개목 또는 개묵 등으로 불리워지기도 한다.
모항리는 현재 소원면 관할의 9개 법정리(法定里) 중의 하나인데, 본래는 원일면(還一面)의 관할 지역이었다.
지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에 모항리는 다른 리동(里洞)과 병합하지 않고 그대로 모항리만을 서산군에 편입시켜 75년 동안 내려오다,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復郡)됨에 따라 모항리는 다시 태안군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이 모항(茅項)에 대한 유래를 살펴보면 이곳의 지형(地形)이 목처럼 잘록하게 생긴데다 띠가 많으므로 이에 연유하여 그대로「띠목」이라 했는데, 뒤에 지명의 한역(漢譯)에 따라 모항(茅項)이 되었다.
또한 이 모(茅)는 아직 개척되지 않은 불모지(不毛地)를 뜻하는 것이고, 항(項)은 물을 건너가는 곳의 지명에 많이 쓰이는 글자이다.
파도리는 현재 소원면 관할의 9개 법정리(法定里) 중의 하나이다. 본래 태안군 원일면의 관할 지역에 편입되어 있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에 다른 리동(里洞)과 병합하지 않고 그대로 리명(里名)을 파도리라 하여 서산군에 편입시켰다.
서산군에 편입된 파도리는 75년간 내려오다, 지난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됨에 따라 다시 태안군 소원면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이 파도리의 유래를 살펴보면,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임으로 특히 겨울철이면 파도 소리가 그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심하여 마을 이름을 그대로 파도리라 명명했다.
송현리는 현재 소원면 관할의 9개 법정리(法定里) 중의 하나이다. 이 송현리는 본래 태안군 원일면(遠一面)의 관할 지역이었는데, 지난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 때에 수유리(水踰里)·산동리(山洞里)·대소산리(大小山里) 등 3개 리를 송현리에 병합시켜 리명(里名)을 그대로 송현리라 하여 서산군에 편입시켰다.
서산군에 편입되어 75년간 내려오던 송현리는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 됨에 따라 다시 태안군 소원면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이 송현리(松峴里)의 유래를 고찰해 보면 본래 솔고개 밑에서 이루어진 마을이므로, 이에 연유하여 그대로「솔고개말」이라 했는데, 뒤에 지명의 한역(漢譯)에 의해 송현리(松峴里)가 되었다.
또한 송현(松峴)·송촌(松村)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마을 뒷산 고개 주변에 유달리 소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으므로 여기서 연유된 명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