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면은 본래 태안군의 남면과 군내면(郡內面) 일부로 이루어졌었는데, 일본 강점기(日本强占期)었던 지난 1914년 그들이 통치 수단의 일환으로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면서, 남면의 관할 지역이었던 장내리(場內里)·몽대리(夢岱里)·신월리(新육里)·곶리(達串里)·동산리(東山里)·진벌리(榛伐里)·송하리(松柯里)·대산리(垈山里)·내잠리(內潛里)·잠곡리(潛谷里)·외잠리(外潛里)·신성리(申成里)·당산리(堂山里)·대암리(大岩里)·원청리(元靑里)·거온리(擧溫里)·웅도리(熊島里)·거아도리(居兒島里) 등 18개 리와,
그리고 군내면 관할의 원동리(院洞里) 일부를 병합하여 리명(里名)을 다시 진산리·몽산리·신장리·달산리·양잠리·원칭리·당암리·신온리·거아도리 등 9개 리로 축소 조정하고, 면명(面名)은 군내면 일부를 남면에 병합시기고 그대로 남면이라 호칭하여, 서산군 관할 지역으로 편입된 채 70여년 내려오다, 1987년 거아도리(居兒島里)가 폐촌(廢村)됨에 따라 9개 리서 8개 리로 축소 되었다.
그후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됨으로서 남면은 다시 태안군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진산리는 본래 태안군 남면과 군내면의 관할 지역이었는데, 일본강점기었던 지난 1914년 그들이 통치 수단의 일환으로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면서, 남면의 진벌리·송하리 일부와 군내면의 원동리 일부를 합쳐서 리명(里名)을 진산리라 개칭하고 서산군 남면의 관할 지역에 편입시켰다. 이렇게 서산군의 관할 지역에 편입되어 70여년 내려오다, 지난 1989년 1월 1일에 태안군이 복군됨으로서 진산리는 다시 태안군의 관할 지역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몽산리는 본래 태안군 남면의 관할 지역이었는데, 일본강점기(日本强占期)었던 지난 1914년 그들이 통치 수단의 일환으로 행정 구역 개편을 단행하면서 몽대리(夢垈里)·동산리(東山里) 그리고 신월리(新月里) 일부를 합쳐서 리명(里名)을 몽산리(夢山里)라 개칭하여 서산군 남면에 편입시켰다.
몽산리가 이렇게 서산군 남면의 관할 지역에 편입되어 70여년 내려오다, 지난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됨에 따라, 몽산리는 다시 태안군의 관할 지역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몽산리의 유래를 살펴보면 위의 몽대리의 몽(夢)과, 동산리의 산(山)자를 따서 몽산리라 명명하였으므로 지명으로서의 특이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이 신장리는 본래 태안군 남면의 관할 지역이었는데, 일본강점기(日本强占期)었던 지난 1914년 그들이 통치 수단의 일환으로 행정 구역 개편을 단행하면서, 신월리(新月里)·장내리(場內里)·몽대리(夢垈里) 그리고 달곶리(達串里) 일부를 합쳐 리명(里名)을 신장리(新場里)라 개칭하여 서산군 남면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 시켰다.
이렇게 서산군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어 70여년 내려오던 신장리(新場里)는 지난 1989년 1윌 1일 태안군이 복군됨에 따라, 다시 태안군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신장리의 유래를 살펴보면 위의 신월리의 신(新)과, 장내리의 장(場)자를 따서 신장리(新場里)라 명명하였으므로 지명으로서의 특별한 뜻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이 달산리는 본래 태안군 남면의 관할 지역이었는데, 일본강점기(日本强占期)었던 지난 1914년 그들의 통치 수단의 일환으로 행정 구역 개편을 단행하면서, 외잠리(外潛里)·대산리(垈山里) 그리고 달곶리(達串里) 일부를 합쳐서 리명을 다시 달산리라 개칭하여, 서산군 남면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시켰다.
이렇게 서산군의 관할 지역이 된 달산리는 70여년 내려오다, 지난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됨에 따라 달산리는 다시 태안군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이 달산리의 유래를 살펴보면 위의 달곶리의 달(達)과, 대산리(垈山里)의 산(山)자를 따서 달산(達山)이라 명명하였으므로, 지명(地名)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이 양잠리는 본래 태안군 남면의 관할 지역이었는데, 일본강점기(日本强占期)었던 지난 1914년 그들의 통치 수단의 일환으로 행정 구역 개편을 단행하면서, 내잠리(內潛里)·외잠리(外潛里)·잠곡리(潛谷里) 등 3개 리를 통합하여 리명(里名)을 양잠리라 개칭해서 서산군 남면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 시켰다.
이렇게 서산군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하여 70여년 지내오다 지난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이 양잠리의 유래를 살펴보면 위의 내잠리와 외잠리인 두 잠리가 합쳐서 이루어졌으므로, 그대로 한자 표기에 따라 양잠리(兩潛里)라 호칭한 것이다.
이 원청리는 본래 태안군 남면의 관할 지역이었는데, 일본강점기(日本强占期)었던, 지난 1914년 그들이 통치 수단의 일환으로 행정 구역 개편을 단행하면서, 원청리(元靑里)·당산리(堂山里) 일부를 합쳐서 리명(里名)을 그대로 원청리라 호칭하여 서산군 남면의 관할지역으로 편입시켰다.
이렇게 서산군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하여 70여년 내려오다, 지난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원청리의 유래를 살펴보면, 서쪽이 바다와 접해 있어 그 파란 물결이 언제나 변함없이 마을앞에 펼쳐있으므로 여기서 연유된 명칭이다.
즉 본래부터 푸른 바다가 보이는 마을이라 하여 원청이라 명명했는데, 이것이 마을 이름으로 굳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당암리는 본래 태안군 남면의 관할 지역이었는데, 일본 강점기(日本强占期) 었던, 지난 1914년 그들이 통치 수단의 일환으로 행정 구역 개편을 단행하면서, 당산리(堂山里)·대암리(大岩里) 그리고 신성리(申城里) 일부를 폐합시켜 리명(里名)을 당암리라 개칭해서 서산군 남면의 관할 구역으로 편입 시켰다.
이렇게 서산군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된 당암리는 70여년 내려오다 지난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됨에 따라 다시 태안군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이 당암리의 유래를 살펴보면 위의 당산리의 당(堂)과 대암리의 암(岩)자를 따서 당암(堂岩)이라 명명하였으므로, 지명(地名)으로서의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이 신온리는 본래 태안군 남면의 관할 지역이었는데, 일본 강점기(日本强占期)었던 지난 1914년 그들이 통치 수단의 일환으로 행정 구역 개편을 단행하면서, 신성리(申城里) 일부와 거온리(擧溫里)·웅도리(熊島里) 등을 폐합하여 리명(里名)을 신온리(申溫里)라 개칭해서 서산군 남면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시켰다.
이렇게 서산군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어 70여년 내려오다 지난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됨에 따라 신온리는 다시 태안군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이 신온리의 유래를 살펴보면 위의 신성리의 신(申)과, 거온리의 온(溫)자를 따서 신온(申溫)이라 명명하였으므로, 지명으로서의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