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암이란 글자 그대로 바위의 생김새가 학같이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이 학암은 원북면 방갈리(遠北面 防葛里) 2구 가시내의 학암포(謔岩浦)에 있다. 이 학암포에는 큰 분점(大盆店)과 작은 분점(小盆店)이 있는데. 큰 분점의 서쪽 끝(西端)낭떠러지 용낭굴위의 바위를 일컫는 것이다. 학암포란 명칭은 이 학암에서 연유된 것인데, 1968년 7월 27일 해수욕장의 개장(開場)과 더불어 붙여진 명칭이다. 그 이전에는 분점포(盆店捕)였다. 이 분점포는 본래 조선조(朝鮮朝)때 중국(明)과의 교역을 하던 무역항(貿易港)이었다.
양국은 여러 가지 물품을 교역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질그릇(동이 또는 항아리 )를 주로 수출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60여년전만해도 질그릇을 굽던 가마터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어 지난날을 회상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자취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질그릇을 만들어 수출한데서 포구(浦口)의 명칭을 분점(盆店)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인데, 즉 동이를 만들어 외국에 수출하는 한편 일부는 내수용(內需用)으로 가게서 시판(市販)하였으니. 그 이름 그대로 동이분(盆)자와 가게 점(店)자를 붙이어 분점이라고 명명한 것은 매우 설득력(說得力)있는 명칭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이 분점포가 무역항으로서 활기가 넘치고 따라서 근해의 어업 기지로서 중선(重船)을 비롯한 많은 어선(漁船)들의 출입이 잦았던 명실 상부한 어항(漁港)이기도 했다.
특히 어선들이 어로 작업을 마치고 만선(滿船)으로 입항할 때의 모습은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오색 영롱한 뱃기를 달고 입항하는데, 깃발의 개수를 보고 그 배의 어획량(漁獲量)여부와 또는 수익금(收益金)등을 점칠수 있었던 것이다.
이같이 분점포구가 활기에 넘치고 있을 때, 원근 각지(遠近各地)에서 많은 사람들이 드나 들었더니, 또한 이 포구는 관광지로서의 역할도 겸했던 것이다.따라서 큰 분점의 학암 부근에는 봄철의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필무렵이면 이곳으로 꽃놀이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서당의 훈장(訓長)은 학생을 데리고 와서 글을 짓고 즐기는가 하면, 지방의 유지 및 유생(儒生)들은 이 학암 옆에 와서 꽃놀이를 하면서 운자(韻字)를 내어 한시(漢詩)를 짓고 읊조리긷 하였다. 비록 시인이 아니더라도 이 아름다운 경치에 접하면 저절로 시상이 떠오르지 않을수 없는 곳이다.
학암 위에서 바라보면 사방이 탁 트인 것이 상쾌한 마음을 자아내게 하고 특히 학암 앞의 푸른 바다에 오가는 어선들의 황포 돛대는,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으니 이 같은 절정에서 유생들이 시를 짓고 읊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없었으리라. 450년 전만해도 바위에 써놓고 한시(漢詩)가 눈에 띄었는데, 지금은 풍우(風雨)에 깎기어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또한 학암 밑에 있는 용낭굴을 비롯하여 주변의 기암괴석(奇岩怪石)의 절경은 마치 해금강을 방불할 정도로 아름다우니 이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저절로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일찍 금송박승원(琴松 朴昇遠)은 관송팔경(貫松 八景)에서 학암(鶴岩)을 이렇게 읊었다.
금지학암(金池 鶴岩)이란 시제(詩題)로 또한 여름철에 만발하는 학암포 해안가 백사장의 해당화(海棠花)꽃은 이 곳의 명물이 아닐 수없다.
명사십리 해당화(明沙十里 海棠花)란 말이 이곳을 두고 일컫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앞에서 열거한 박승원의 관송 팔경에서 명소해당(明沙 海棠)이란 시제로 이렇게 읊고 있다.
각시 바위는 원북면 신두리 3구의 백사장 쪽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산기슭에 있다. 이 바위는 큰 바위와 주변의 작은 바위들로 이루어져있는데 이를 각시 바위라 부르게 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옛날 어느 아가씨가 이 동네로 시집을 와서 살고 있었는데, 시집살이의 구박이 심하고, 갈수록 고된 생활만 쌓이고 쌓였다.
몸은 점차 쇠약해지고, 앞으로의 희망 마저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으니, 그녀에게는 오로지 괴로움과 슬픔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매일 저녁 이 곳으로 나와 슬피울다가 집에 들어가곤 하였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이 계속되던 어느날, 시어머니의 혹독한 구박에 슬픔을 이기지 못한 새색시가 구슬프게 울다가 쓰러져 죽고 말았는데, 시신(屍身)이 변하여 바위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일이 생긴 뒤부터 마을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 바위를 가리켜 각시 바위(달리 치마바위라고도 부른다) 라고 부르게되었고,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한다. 그런데 이 바위를 건드리면 이변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바위를 건드린 사람은 물론 그의 측근자까지도 화를 입는 것이었다.
어느날, 이 마을 청년이 이 곳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가 무의식중에 각시 바위를 건드린 것이 화근이 되어 집에 돌아와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그후 이 청년의 동생까지 까닭없이 앓아 눕더니 일어나지도 못하고 신음만하다가 죽으니 이 집의 대가 끊기고 말았다. 이 같은 일이 일어난 뒤부터 동네 사람들은 이 각시 바위 근처는 물론 멀리에서 조차 그 바위를 바라보는 것을 꺼려했다 한다. 각시 바위가 있는 이 곳에는 서해의 하와이로 불리는 신두리 해수욕장이 있는데, 탁트인 백사장과 깊고 푸른 바닷물이 태평양의 한 바닷가를 연상케 한다.
모래가 깊은 백사장은 꼬마들이 모래성을 쌓기에 안성맞춤이다. 또한 해수욕장 주변은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조용히 자리하고 있는 농촌 풍경을 볼 수 있어 도시인들이 향수에 젓어 드는 곳이기도 하다.
농촌 지역일수록 법정 지명(法定地名)의 호칭보다는 통속적인 자연부락명으로 부르는 것이 더욱 친근감이 있고 정서적이어서 좋다.
또한 이 자연 부락의 명칭은 그 유래가 매우 다채로와서 많은 흥미를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지명 연구에는 필수 불가결의 조건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 태안군도 예외가 아니어서 많은 자연 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명칭이 무려 1,024개에 이르고 있다.
이제 기술하고자 하는『잿말』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 잿말이란 마을은 원북면 이곡리 2구에 있는 자연 부락의 명칭이다.
옛날에는 그러니까 간척 사업으로 인한 방조제가 축조되기 전까지는-바닷물이 이 잿말 앞까지 들어 왔었다.
그런데 이 마을의 입구에는 커다란 차돌 바위가 우뚝 솟아 있어 차돌 마을이라 부를 정도로 상징적이었다.
이 차돌 바위 가까이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한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욕심이 많기로 이름난 구두쇠여서 노랭이 영감으로 불리었다.
이 영감은 남에게서 받는 것만을 좋아할 뿐, 지푸라기 하나라도 남에게 줄줄 모르는 지독한 구두쇠였기 때문에, 이집을 찾아오는 시주승 역시 주인으로부터 시주는 커녕 번번히 문전 박대를 당하고 마는 것이었다.
이에 은근히 화가난 스님들이 어느날 시주차 이 마을의 입구를 지나가다 우연히 이 욕심장이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이때 시주승은 이 노인에게 말하기를 “이 마을의 지형을 살펴보니 저기 입구에 우뚝 솟은 차돌바위를 깨뜨려 버리면 이 마을은 물론 영감께서는 이 마을 제일가는 갑부가 될 것이오.” 하고는 총총 걸음으로 건너 마을로 사라져 갔다. 이 말을 들은 욕심꾸러기 영감은 은근히 호기심이 생겨서 다음날 아침에 인부를 동원하여 차돌을 깨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약 대여섯 시간쯤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데, 갑자기 깨어지는 돌이 재로 변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광경에 놀란 인부들은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입을 다문채 서 있었다.
침묵만 흐르고 있었다. 웬지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쳐갔다.
인부들은 작업을 중지하고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부터 이 마을에 갑자기 가난이 닥쳐오고, 욕심꾸러기 영감도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같은 일이 있은 뒤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차돌이 부서져 재로 변했으니 이 마을을『잿마을』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명칭이 오래도록 이어져 내려왔다.
그런데 수십년 전래되어 오면서『잿마을』이『잿말』로 줄어서 지금은 잿말로 불리우고 있다.
이 이화산(梨花山)은 원북면 마산리 2구에 있다. 태안에서 서북쪽으로 포장 도로를 따라 약 8킬로미터 쯤 가다보면 원북면 소재지에 이르게 된다. 이 소재지에서 마주 보이는 우뚝 솟은 산이 바로 이화산이다.
이 산은 소원면의 철마산 줄기가 뻗어 내려 마산리의 중심부에서 기봉한 것인데, 그 높이는 170미터에 불과하지만, 주민들로 부터 매우 사랑을 받고 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특히 가을이면 산이 붉게 타는 단풍의 명소로 널리 알려진 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산의 중턱에는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보통 바위가 아니라, 멀리서 보면 마치 탑같이 보이는가 하면, 가까이에서 보면 돌부처 같이 보이는 신기한 바위이다.
이화산에 이같이 신기한 돌이 있다는 소문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을 통하여 널리 알려지자, 다른 동네 사람들까지 이를 구경하러 모여드는가 하면, 심지어 어느 여인들은 이 바위 앞에서 정성껏 기도를 드리기도 하였다.
목욕 재계하고 정성껏 기도를 드리면 소원이 성취된다는 소문이 이웃 마을에까지 널리 퍼지게 되자 많은 부녀자들이 이 곳에 찾아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널리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이 그칠사이 없이 모여들자, 이웃 동네에 있는 절에서 이 돌을 탐내어 아예 자기 사찰 경내로 옮겨 놓으면 이 많은 손님들이 자기 절로 찾아올 것이며, 그렇게 되면 절이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웃 절에서는 이 돌을 옮겨 가기 위해 많은 인부들을 데리고 이화산으로 들어가 운반 작업을 시작하다가 결국 마을 사람들에 의해 발각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그뒤 절에서는 마산리 주민들과 교섭을 통해 이돌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하여 주고 이 돌을 이웃 마을의 절로 옮겨갔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이화산에서 괴변이 일어났다.
전에는 들어볼 수 없었던 사람의 울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이 울음소리는 예사의 울음소리가 아니라 구슬프게 들리는가 하면 무엇인가 절실히 호소하는 듯 애절(哀絶)하여 듣는 사람이 가슴을 에어내는 듯한 느낌을 받게하는 것이었다. 이 같은 울음소리는 돌이 있던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었는데, 주민들은 입을 모아 한결같이 산이 운다고 하였다. 이화산이 밤이면 구슬프게 운다는 소문이 이웃 동네에까지 퍼지자 괴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이 울음소리를 들으러 밤마다 몰려 올 정도였다. 급기야 마을 사람들은 동네 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논의의 결론은 그 돌을 찾아다 제자리에 놓자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절로 옮겨간 돌을 찾아다 제자리에 놓으니 그날 밤부터 슬피 울던 산이 울음을 그치고 동네는 다시 평온해졌다. 비록 생명이 없는 돌이지만 제자리를 떠나므로 해서 자연의 균형이 깨어지고, 따라서 찾아 오는 사람들이 없게되자 외로움을 달래지 못한 산이 결국 울음으로 호소한 것이었다. 오늘날 수석이나 분재 애호가들이 돌이나 나무를 함부로 캐냄으로 인해서 자연이 파괴되고 오손되고 있는데 이같은 일은 마땅히 삼가해야 할 것이다. 그 돌과 그 나무는 제 자리에 있으므로 해서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루봉은 원북면 황촌리 2구의 속칭 황굴 벌판(황굴누리)에 위치한 해발 120여미터에 불과한 조그마한 야산이다.
본래 이 또루봉은 방갈리 1구(방축굴)에 우뚝 솟아 있는 국사봉의 한 줄기가 서남쪽으로 뻗어 내리다 기봉하여 이루어진 산이다.
국사봉의 산줄기는 이 또루봉에서 끊겼다. 이 또루봉은 주위가 모두 백사장으로 둘러 쌓여 있는데, 그 중 한 면만이 해당화 나무와 여러 잡초가 자라고 있을 뿐이다. 이 잡초가 있는 기슭에는 길이 나있는데, 방갈리 2구인 가시내와 황굴(황촌리 2구)을 경유하여 원북면 소재지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다. 1968년 학암포 해수욕장이 개장 됨에 따라 도로가 확장되어 차량이 통행할 수 있는 큰 길이 되었지만, 그 이전에는 겨우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인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약 30여년 전에 이 또루봉 주변의 백사장에 대대적인 식목 사업을 벌였는데, 지금은 푸른 소나무 숲으로 백사장이 완전히 덮혀 있다.
또한 황굴 벌판은 해당화 나무와 갈대, 그리고 이름모를 잡초가 목초지를 이루어 여름철이면 이 곳에서 농우가 한가로히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이 지역이 모두 개간되어 논밭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해안가는 방풍림의 일환으로 식재한 아카시아 나무가 자라서 큰 숲을 이루고 있다.
이 같이 황굴 벌판의 모습이 새롭게 바뀌어 주민들의 활기 넘치는 생활터전이 되고 있으나, 지금으로부터 약 60여년 전만해도 이 또루봉 기슭에는 밤에 여우가 나타나 이 곳을 오가는 행인들을 괴롭혔다는 것이다.
가시내가 고향인 사람들은 어렸을 때 이 또루봉 앞을 지나다 여우에게 봉변을 당한 체험담을 어른들로부터 들은 기억이 지금도 머리속에 생생이 떠오른다고 한다. 여우에 대한 이야기는 전국 각지에 널리 퍼져 있는데, 특히 구미호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신하여 사람들을 괴롭혀 왔다는 것이다.
할머니로 변신하여 잔치집에 갔다 그곳에서 일어난 이야기, 어여쁜 아가씨로 둔갑하여 남의 아내가 되었다는 얘기, 밤중에 길가는 사람앞에서 훤하게 길을 밝히어 다른 곳으로 유인했다는 얘기, 사람을 잡아 먹었다던가 사람의 무덤을 파서 송장을 뜯어 먹었다는 얘기, 또는 여우가 울면 사람이 죽거나 그 동네에 큰 화가 미친 다는 등등 헤아릴 수 없는 여러 종류의 이야기가 있다. 이 모두는 여우가 사람을 괴롭히고 못살게한 불길한 존재로서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동물로 전해지고 있다.
하기야 지금도 매우 교활하고 변덕스런 여자를 보고 여우같다느니, 또는 간사스럽게 아양을 떤다든가 아니면 간드러진 언행으로 남을 홀리는 여자를 보고 여우 떤다는 말을 쓸 정도이고 보면, 여우에 대한 사람들의 『이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또루봉 앞을 지나다 여우에게 봉변을 당하고 심지어 며칠씩 누워있던 사람들도 속출하였으나, 사람들이 이같은 사실을 알고도 부득이 밤에 이곳을 지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이 길이 가시내를 오가는 유일한 길이며, 우회 도로는 오히려 험한 산길이 되어서 크게 불편하였기 때문에 이 길을 외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교통 수단이 발달하고 상업이 발달하여 생활의 편리를 제공해 주고 있지만, 옛날에는 생활 필수품을 구입하기 위해 100여리가 넘는 태안장을 걸어서 갔다와야 했기 때문에 새벽 일찍 출발한다 해도 장감을 하다 보면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의례히 늦어져서 밤에 이 또루봉 앞을 지나게 되었던 것이다.
될 수 있으면 동행이 없는 밤에 이 곳을 지나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지만, 부득이 혼자서 걷다가 봉변을 당하였다 한다. 주로 달빛이 없는 그믐께나, 아니면 날이 흐려서 어둠침침할 때, 또는 안개가 짙게 끼어 주위가 잘 안보일 때 흔히 당했다는 것이다. 특히, 길을 가다가 방향을 잃고 허둥지둥하는데 갑자기 앞이 훤하게 트여 그 곳으로 얼마만큼 따라가다 보면 다시 캄캄해져 정신을 차리게 되는데, 이때 집과는 전연 다른 방향에서 헤매고 있었다는지, 길을 가다 보면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 앞에서 걷고 있어 반가워서 동행을 할려고 부르려 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달려가도 항상 그 거리만큼 유지되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데 삽시간에 사람의 모습은 없어지고 여우가 캥캥 울며 도망치고 있어 정신을 가다듬어 보니 깊은 산속이나 해변가이었다는 이야기 등이 전해져 오고 있다. 이렇게 이 곳을 지나던 행인들이 또루봉 여우에게 홀리어 많은 봉변을 당했지만 다행히도 죽은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이리하여 동네 사람들은 밤에 또루봉 앞을 지나기를 무척 꺼려하였으며, 대낮이라도 안개낀 날에 이곳을 지날려면 꼭 여우가 나타나는 것 같아서 괜히 쭈삣쭈삣 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한다.
지금은 지난 날의 이 같은 이야기를 믿으려는 사람도 없거니와 또한 밤중에 혼자 걸어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러나 지금이 오히려 이 또루봉을 비롯하여 주변에 나무숲이 우거져서 밤에 이 곳을 지난다면 도깨비라도 나올 것 같은데,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전엔 주위가 삭막한 백사장이요 또한 또루봉의 면적이라야 겨우 3,000여평에 지나지 않는 야산으로 나무가 있다해도 윗 부분에 소나무가 드문드문 서있을 뿐이었는데 어쩌다 그렇게 악명 높은 여우 출몰 지역으로 이름이 났는지 알 수 없다.
이 장구섬(長鼓島)은 원북면 방갈리 2구에 있는 자연 부락 이름이다. 갈머리 버스 종점에서 동남쪽으로 약 1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바닷가에 인접한 조그마한 동네인데, 이 곳에서 장구섬을 비롯하여 소리섬, 거문고섬(거문부리), 그리고 육굴 등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 마을은 아담하고 평화스로운 곳이다.
그런데 현재는 이 장구섬에만 몇 채의 집이 있을 뿐 소리섬이나 거문고섬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 또한 장구섬, 소리섬, 거문고섬 등 이름에 모두 섬자가 붙어있기 때문에 현지에 가보지 않고는 누구나 섬으로 착각하기 쉽다. 옛날 선녀들이 살았을 때는 섬이었는지 모르지만 현재는 모두 육지로 되어 있다.
옛날에 지각 변동으로 인하여 본래 섬이었던 것이 육지로 연륙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쨋든 옛날에는 이 장구섬에 선녀들이 살았다 한다. 옛날, 하늘 나라에 옥황상제가 살고 있었는데, 이 옥황상제는 측근에 많은 선녀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많은 선녀중에서도 세 선녀를 특히 귀여워 했다.
이 세선녀를 귀여워한 것은 이들이 제각기 색다른 특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아껴 주었던 것이다. 이들 중 한사람은 장구를 잘 쳤고, 또 한 사람은 거문고를 잘 탔으며,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은 소리(노래)를 잘 하였기 때문에 궁중의 분위기가 항상 화기애애 하였으며, 동료간에도 화합이 잘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세 선녀들은 남달리 뛰어난 기능을 가졌다해서 특별히 옥항상제로부터 총애를 받게 되자 태도가 오만해지고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했다. 옥황상제는 이같은 태도가 매우 불쾌하여 세 선녀를 불러 놓고 타일렀다.
이러한 타이름을 받고도 세 선녀는 조금도 반성하는 기색이 없이 오히려 언행이 더욱 방자해졌으며, 이에 따라 동료간에 위화감이 조성되고 질서도 문란해졌다. 옥황상제는 이같은 실태를 더 이상 묵과 할 수 없어 마침내 세 선녀를 지상으로 추방하였다. 이렇게 추방을 당한 선녀들은 지상에서 안주할 곳을 찾다가 마침내 내해의 조용한 섬을 발견하게 되었다.
세 선녀가 이 섬으로 내려와 보니 주변에 또 다른 조그마한 섬들이 있었다.
선녀들은 의논끝에 드디어 각각 하나의 섬을 차지하고 살면서 자주 왕래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세 선녀들이 각각 떨어져 살면서 지난 날 하늘 나라에서 저질렀던 일을 반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 것이었다.
추방전에 반성을 하고 용서를 받았어야 했는데, 추방후에 반성한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하늘나라에서 화려한 생활을 누리다가, 어느날 갑자기 지상의 황폐한 무인 고도에 내려와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미쳐 몰랐던 것이다.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하였으리라.
『무인 고도에 귀양을 와서 지난날의 화려했던 왕궁의 꿈을 더듬으며 눈물 짓는 공주의 심정과 같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이렇게 황폐한 섬에서 그것도 세 선녀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 떨어져서 외로움을 달래가며 여러 해를 살아오고 있었으나 더 이상 버티어 낼 수가 없게 되자 결국 한 섬에 모여 같이 살아가기로 결정 하였다. 이들은 한 섬에 같이 살면서 수년동안 한결같이 진심으로 지난 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용서를 빌었다.
드디어 이들의 정성이 하늘에 닿아, 즉『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그대로 이루어져, 옥황상제께서 이 세 선녀를 용서하고 다시 하늘 나라로 불러들이게 되었다 한다. 이 같은 일이 있는 뒤에 마을 사람들은 장구를 잘 치던 선녀가 살던 섬을 장구섬, 거문고를 잘 타던 선녀가 살던 섬을 거문고섬, 그리고 소리(노래)를 잘 하던 선녀가 살던 섬을 소리섬이라 이름하였다하는데 오늘날 까지 전래되어 오고 있다.
두룽개재는 원북면 신두리 3구에 있는 산고개를 말한다.
2구에서 3구로 왕래하는 통로인데 산줄기가 2구에서 3구로 뻗어내려서 이루어진 산마루이다. 이 두룽개재에 오르면 끝없이 펼쳐친 신두리 백사장이 눈앞에 훤히 내려다 보이며, 시야가 시원스럽게 탁 트인 서해에서 불어오는 비릿한 갯바람이 피부에 와 닿는다. 기껏해야 해발 백 이삼십 미터에 지나지 않는 조그마한 야산이지만, 여름철에 산등성이를 타고 한참 동안 걷다보면 등줄기에 제법 땀이 흐르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두룽개재는 비교적 사람의 내왕이 잦은 곳이다.
동네 사람들은 물론 다른 동네 사람들까지 드나드는데, 마주 보이는 곳이 소원면 의항리이기 때문이다. 이 의항리 (개묵)를 가기 위해서는 두룽개재를 넘어 백사장에서 나룻배를 타거나, 간조(干潮)때 걸어서 바다를 건너야하는데, 이때 바닷물의 깊이는 보통 어른들의 허리쯤 닿는다.
즉 1미터 내외가 된다. 이같이 개묵과 두룽개를 오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 두룽개재를 넘는데, 특히 여름철에 이 고개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이어 경치도 좋고 시원한 바람이 땀을 씻어주기 때문에 길손들은 대부분 이 곳에서 땀을 식히고 간다. 그런데 옛날에 이 두룽개재에는 100년 묵은 여우가 살고 있었다 한다.
이 여우는 날씨가 흐리거나 달이 없는 어두운 밤, 또는 안개로 인하여 지척을 가리기 어려운 때에, 할머니나 어여쁜 아가씨로 변신하여 행인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특히 어두운 밤에 혼자서 이 두룽개재를 넘다보면 여우에게 유혹되어 여우굴로 끌려가서 죽게 되는데, 여우는 사람을 죽여서 간을 꺼내 먹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소문이 온 동네에 퍼지자 밤이면 혼자서 이 고개를 넘으려는 사람이 없었는데 부득한 경우에는 두 사람 이상이 동행하거나 아니면 횃불을 켜들고 다녀야 했다. 지금은 교통이 발달하여 웬만한 시골이면 거의 버스가 운행되고 따라서 마을 안길이 확장되어 승용차가 드나들 정도이고 보니 혼자서 밤중에 산길을 걷는 일이 거의 없어진 것 같다.
그런데 옛날에는 두룽개에서 걸어서 태안장에 갔다 올려면 아무리 일찍 새벽 밥을 지어먹고 다녀온다 해도 어둡기전에 두룽개재를 넘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장에 갔다 즉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장감을 하기 위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벌써 오후에 이르게 되고 거기에다 오랫만에 친구라도 만나 정담이라도 나누다 보면 시간이 금새갔다.
부랴부랴 장감을 하여 가지고 돌아오지만 짐이 무거워서 쉬엄쉬엄 오다보면 자연히 두룽개재는 어두운 저녁에나 넘게 되었다.
이때는 동행이 있어야지 혼자서는 무서워서 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여우가 둔갑을하여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다 해도, 산에 나무 숲이 우거지고 그 위에다 길까지 험해서 낮에라도 산길을 걷는다는 것이 여간 조심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물며 여우가 둔갑하여 행인을 괴롭히며 심지어 사람을 잡아 먹는다고 하는 소문이 파다한데 이런 두룽개재를 혼자서 밤에 넘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은 이같은 이야기를 믿으려는 사람들도 없거니와 또한 이런 전설도 우리들의 주변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러나 이 전설의 내용을 아는 사람들은 요즘도 이 두룽개재를 넘을때면 지난 날을 회상하면서 담소하고 있다 한다.
용낭굴은 원북면 방갈리 2구 가시내(開市內)의 학암포에 있다. 학암포의 본래 이름은 분점포였는데, 지난 1968년 7월 27일 당국의 허가를 받아 해수욕장이 개장되면서 그 명칭이 바꾸어진 것이다.
지금은 30여년이 되어서 그런지 분점이란 명칭은 완전히 사라지고 학암포로 널리 알려져 여름철이면 경향 각지에서 많은 해수욕객들이 찾아 들고 있다. 학암포에서는 큰 분점과 작은 분점이라고 불리우는 두 개의 섬이 있는데, 바닷물이 나가기 시작하면 서시히 길이 드러나기 시작하여 육지와 연결이 되어 사람들이 자유로히 드나들 수 있고, 또한 바닷물이 들어오면 섬으로 변하여 보행으로 출입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이 용낭굴은 큰 분점의 학암(학처럼 보이는 돌)밑에 있다.
그 길이는 표면상에 노출된 부분이 10여미터에 달하고 폭은 1미터 정도인데 밑으로 바닷물에 잠겨 있기 때문에 실제상의 굴의 깊이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마을 촌로(村老)도 굴이 뚫려 있다는 말과, 명주실 꾸리가 수십개 들어가도 그 끝이 없다는 등 용굴이 매우 깊고 길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용굴이 바다밑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길게 뻗어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용낭굴의 폭이 약 2미터 전후이기 때문에 부녀자들이 이 근처로 해산물을 채취하러 올 때면 지름길을 택하여 의례히 이 굴을 넘어서 다음 장소로 옮겨 다니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한 부인이 실족하여 이 용낭굴로 떨어져 죽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전의 일이었다.
사고가 난 이후 날씨가 궂으려면 이 용낭굴에서 구슬픈 울음 소리가 난다고 하여 이 근처에 접근하기를 무척 꺼려했으며, 또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여인의 울음 소리를 직접 들은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죽은 사람의 넋이 진혼이 되지 못해 그렇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위령제를 지내는가 하면 무당을 불러 굿을 하기도 하였다. 사람이 용낭굴에 빠져 죽은 뒤에 뭇사람들의 입에선 생전의 죄가 많아서 그랬다느니, 혹은 용이 잡아당겨서 죽었다는니 하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항간에 떠돌았으나, 이는 60여년 전의 일이었고, 지금은이에 대한 소문이 말끔이 사라지고, 다만 하나의 전설로 전해져 오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와서는 이 용낭굴을 비롯하여 주변의 괴암절벽, 그리고 학암을 구경하러 찾아드는 관광객이 여름철이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옛날 이 굴에서 용이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용낭굴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는데, 이 용낭굴을 한번 구경하는 것도 좋은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원북면 방갈리에는 학암포 해수욕장이 있고, 왼켠으로 황촌리 해안에 『두멍골』이라는 이름을 가진 계곡이 있다.
그 계곡을 올라가는 산 허리를 뚫고 있는 천연의 동굴이 있는데, 이 동굴은 입구가 매우 좁아 사람이 겨우 비집고 들어갈 만하다. 그러나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점점 넓어져 마당만한 넓이의 길이 뻗어 있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동굴 안에는 굴유석이 기둥처럼 달려있어 건드리면 청아한 소리를 내고, 굴안에서 흐르는 맑은 물은 물맛이 좋고 시원해서 옛날 사람들은 이곳에서 피서를 했다는 것이다. 요즈음은 이 동굴이 막혀서 안으로 들어가면 길이 좁고 퀘퀘한 냄새가 날 뿐만아니라, 박쥐들이 서식하고 있어서 누구나 들어가기를 꺼리고 있다. 더우기 이 동굴 속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얘기가 있는가 하면, 큰 이무기가 살고 있는데 사람이 들어가기만 하면 삼켜버린다는 이야기가 있어 사람들이 그 근처를 가는 것 조차 꺼리고 있다 한다. 한편 두멍골(두명골)이라는 이름이 지어지기까지는 두가지 전설이 있는데, 그 하나는 옛날 중국의 선비 도연명이 이 동굴 속에서 살면서 시를 읊고 도를 닦았기 때문이라는 것과, 또 하나는 이 두멍골에 두견이(소쩍새)가 많이 살았기 때문에 그 이름을 두멍골이라 했다는 것이다. 도연명이 두멍골 동굴에서 도를 닦고 시를 읊었다는 전설은 더 자세한 이야기가 없는 대신, 우리나라에 두견새가 많이 살고 그 울음 소리가 관동팔경의 하나로까지 꼽혔다는 것을 생각하면 두견이 많이 살아서 지어진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옛날, 방갈리 가시내(개시내)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청년이 있었다.
이 청년은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한가지 걱정은 어머니가 늘 병석에 누워있는 것이었다.
효성스런 아들은 좋다는 약을 다 써보았지만 어머니의 병은 더해만 갔다.
어느날 이 젊은이는 의원에게 약을 지러갔다가 의원으로 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자네 모친의 병은 내가 지어주는 약으로는 고치기가 힘들다네. 자네 어머니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은 청나라에 가야 구할 수 있는데, 약값이 비싸고 구하기도 힘들다네.” “청나라에 가면 구할 수는 있나요?” “있기는 있지, 그러나 그 약을 구하려면 청나라에 가야하고 간다해도 자네의 힘으로 가능할는지 모르겠네.” 청년은 의원의 말에 한가닥 희망을 가졌다.
그리고 청나라에 갈 궁리를 했다.
그 당시 학암포 앞 동네 개시내에는 중국의 무역선이 드나들었다.
개시내란 지명도 그 때 시장이 열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니 무역의 규모도 작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렇게 청나라 무역선이 드나들때이니 잘만하면 중국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잡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젊은이는 청나라 무역선이 들어오는 때를 기다렸다가 배가 들어오자 선장에게 간청했다. 청나라 선장은 처음에는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했지만 청년의 효성에 감동하여 같이 갈 것을 허락했다. “하지만 중국에 간다해도 그 약이 어디에 있는지 자네가 알 수 있겠나? 그리고 그 약값이 비싸다고 하는데 어떻게 구할 건가?” “우선 청나라에 가면 또 방법이 있겠지요.” 청나라로 가기 전 날 밤, 청년은 어머니께 청나라에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드리고, 다음날 일찍 무역선에 몸을 실었다.
무역선에는 중국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었는데 젊은이에게 행운이 따랐던지 중국에 가면 큰 약방이 있는데, 그 약방 주인과 잘 아는 사람이 그 약방까지 안내해 주겠다고 나섰다.
여러 날이 걸려 무역선은 청나라에 도착했다.
젊은이는 배에서 만난 중국인을 따라 중국에서도 큰 약방으로 꼽힌다는 약방까지 따라갔다.
중국사람은 약방주인에게 젊은이의 사정을 이야기하고는 다른 바쁜 일이 있다면서 먼저 갔다.
약방주인은 그 약이 있긴 있는데 구하기 힘들고 찾는 사람이 많아서 약값이 비싸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젊은이에게 그만한 돈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젊은이에게 그만한 돈이 있을리 없었다.
솔직히 주머니에 돈이 한 푼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 무일푼으로 어떻게 약을 구하겠다고 왔는가?” “죄송합니다.
약값은 후일 꼭 드릴 터이니, 외상으로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러나 약방주인은 그것만은 안된다고 거절했다.
젊은이는 눈앞이 캄캄했다.
다시 울며 불며 사정했지만 약방주인은 역시 거절했다.
한 두 푼짜리 라면 몰라도 젊은이가 일년 내내 품삯을 모아도 모자랄 엄청난 금액의 약을 외상으로 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제가 주인 밑에서 열심히 일을 할터이니 품삯으로 약을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젊은이의 이 말에는 주인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의 효성으로 보아서는 약을 그냥 주고도 싶었지만 너무 비싼 약이라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지금 자기에게도 일꾼이 한 사람 필요했기 때문에 젊은이를 고용하기로 했다. “그럼, 내 집에서 일을 하겠나?”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젊은이는 약방에서 약을 썰고 약봉지를 싸고, 집안 청소까지 맡아 열심히 일했다.
평소에도 부지런한 젊은이는 금방 주인의 눈에 들었다.
부지런하고 심성이 착하고 효성스런 젊은이가 정이 들어 반년쯤 되자 자기 식구처럼 생각됐고, 이제는 약을 주어 보내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어느날, 주인이 젊은이를 불렀다. “우리집에 온지도 반년이 지났네.
그동안 수고가 많았는데, 자네의 어머니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니 내일 무역선을 타고 가게.” “그럼, 약을 주시는 겁니까?” “주고말고.
약값으로 따지자면야, 아직도 자네 품삯으로는 부족 하지만, 자네의 효성에 내가 그냥 주는 것일세.” “감사합니다.” 젊은이는 가슴이 뛰었다.
반년만에 집으로 가게 됐다는 기쁨보다도 어머니의 약을 구했다는 기쁨으로 그는 밤잠을 설쳤다.
그런데 그날 밤 젊은이는 주인집 외동딸로부터 사랑의 고백을 받았다.
약방에는 이집의 외동딸이 있었는데 젊은이의 나이와 비슷했다.
처녀는 이따금 마주치는 젊은이를 짝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회를 보아 부모님께 먼저 말씀드리고 젊은이에게 청혼을 하려 했는데, 갑자기 내일 떠난다니 처녀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용기를 내어 젊은이의 방을 찾아갔다. “다시 돌아올 수 있나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제게는 어머니 한분이 계시는데 이제 약을 구했으니 건강을 찾으시면 제가 모시고 고향에서 살아야 합니다.” 젊은이도 이따금 마주치는 주인집 딸이 마음에 들었었다.
예쁜 몸매, 상냥한 마음씨, 부자집 외동딸, 그러나 젊은이는 어머니를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럼, 제가 조선으로 가겠습니다.
그곳에 가서 살겠아오니 허락해 주십시요.” “그건 안됩니다.
낭자께서도 부모님이 계신데 낭자가 집에 없으시면 부모님이 얼마나 서운해 하시겠습니까?” 이같은 사실을 약방주인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도 사위감으로 점치고 있었지만, 이국 청년을 사위로 삼는 것은 딸 하나를 그냥 잃어버리는 것 같아 쉽게 말을 못한 것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딸의 마음을 알았으니 주저할 것이 없었다. “여기서 조선까지는 수천리가 되지만 무역선도 드나드는 시국이니 자주 왕래 할 수 있을 것이네, 어머니 병환이 완쾌되시거든 식을 올리도록 하세.” 이렇게 하여 젊은이는 어머니의 약을 구하고, 또 예쁜 색시까지 얻고는 다음날 무역선을 타고 조선으로 향했다.
그러나 젊은이의 어머니는 날마다 병이 악화되어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죽기전에 아들이나 보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에 매일 아들을 기다렸다.
무역선이 언제 들어오는지 동네 사람을 시켜 알아보기도 하면서 아들을 기다리느라 얼마나 속을 태웠던지 어머니는 아들을 보지도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아들은 약을 구한 것이 기뻐서 배가 빨리 고향에 닿기를 빌며 배 위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여러 날이 걸려 배가 개시내 앞 바다에 닻을 내렸다.
젊은이는 뛰다싶이 배에서 내려 집으로 달려 갔다.
가는 도중에 동네 사람을 만나 어머니 안부를 물었으나, 동네 사람의 대답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와 같았다. “자네 어머니는 자네를 애타게 기다리다가 세상을 뜨셨네.
저 또루봉 언덕에 자네 자당의 묘가 있으니 그리로 가게.” 젊은이는 어머니 무덤에 가서 밤낮 없이 사흘을 울었다.
그런데 사흘이 되던 날, 갑자기 천둥 번개와 함께 폭우가 쏟아지더니 어머니의 무덤이 갈라지고, 어머니와 아들이 빗줄기에 실려 지금의 두멍골 동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늘은 다시 맑아졌다. 이 광경을 본 동네 사람들은 효성스런 아들을 영원히 어머니와 같이 살도록 하늘이 동굴속으로 데려갔다고 믿었다.
한편, 중국에서는 처녀가 아무리 기다려도 청년이 돌아오지 않았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마음이 변한 것이야, 내가 직접 가봐야겠어.” 처녀는 부모님을 졸라 무역선에 몸을 싣고 조선으로 왔다.
그러나 조선땅에서는 그녀에게 슬픔만을 전해주었다.
이 처녀는 동굴 근처에서 밤낮 없이 울었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라도 나타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음식도 먹지 않고 울었다.
보다 못한 동네 사람들이 중국으로 돌아가기를 권했지만 처녀는 듣지 않았다. “내 평생 낭군으로 모실 사람이 죽었으니, 내가 살아 무엇하리.” 이렇게 죽기를 각오한 처녀 앞에, 어느날 젊은이의 혼이 나타났다. “고향으로 돌아가시오.” “싫습니다, 당신 있는 곳으로 나도 데려가 주십시요.” “안될 말, 내일 무역선이 떠나니 고향으로 가시오.” 젊은이는 이렇게 냉정히 말하고 사라졌다.
그러나 처녀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기어이 굶어 죽고 말았다.
그 처녀의 넋은 두견새로 변해 동굴 주위를 맴돌며 슬피 울었다. 지금도 두견새는 봄만되면 찾아와 구슬피 울며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되살리고 있어 듣는이의 마음을 서글프게 하고 있다.
천혜의 국토, 금수강산인 우리 나라이지만 지리적인 여건은 늘 외침으로 인하여 시달림을 받아온 민족이다. 청일 전쟁만 해도 암담함을 안겨주었던 우리 역사의 한토막이아닐 수 없다.『뱅이섬의 전설』은 청^일전쟁이 치열하던 때의 이야기다.
원북면에는 유명한 학암포 해수욕장이 있다.
명사십리라 할 만큼 긴 해안의 모래밭은 여름이면 해당화로 장관을 이룬다. 탁 트인 앞바다에는 많은 섬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중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일곱개의 섬이 있으니 이름하여『대뱅이』,『굴뚝뱅이』,『거먹뱅이』,『돌뱅이』,『수리뱅이』,『질마뱅이』,『새뱅이』라는 칠뱅이(七防夷)이다.
모두 오랑캐를 방어했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이 뱅이(방이=防夷)라는 이름이 지어지기 까지 그 전해 오는 이야기가 자못 감동적이다. 이 이야기는 오랑캐의 침략으로 우리 민족이 고통을 당하던 때의 이야기기다.
더우기 우리고장 태안은 오랑캐의 침략으로 한동안 폐군이 됐던 역사적인 수난의 시기가 기록된 것을 보더라도 오랑캐의 행패가 어떠했는가를 짐작할만 하다. 어느 해, 중국으로부터 수십척의 오랑캐 군함이 처들어 왔다.
그들의 진로는 중국과 가까운 학암포였다.
학암포는 원북면 방갈리 해변이며, 중국과 가까운 관계로 중국과 해상을 통한 교역이 성하였었다. 학암포 옆 마을에는 개시내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의 이름도 중국과의 무역으로 인하여 시장이 열렸다(開市)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이 학암포에서 저멀리 수평선으로 아물아물 보이는 무수한 섬들 중에 위에서 말한 일곱섬이 있었다. 그런데 이 일곱 섬은 원래는 여섯 섬이었는데, 오랑캐와의 전쟁 때 새로 섬하나가 생겼기 때문에 일곱 섬이 됐고, 새로 생긴 섬이라 하여『새뱅이』라 명명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다시 전쟁의 상황으로 돌아간다. 오랑캐의 군사가 수백척의 전함을 이끌고 서서히 쳐들어오자 조정에서는 긴급 국방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평소 국력을 기르지 못했고 군사 훈련을 소홀히 한 조정은 오랑캐를 물리칠 묘책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임금은 탄식과 한숨이 섞인 목소리로 중신들에게 물었다. “싸워야 합니다.” “화해함이 어떨는지요?” 신하들은 강경과 온건으로 나뉘여 토론을 거듭한 결과 싸우자는 쪽으로 결론을 지었고, 서둘러 군사를 모으고 전열을 정비하여 서해로 진격했다.
하지만 수군(水軍)이 없었다.
있다고 해도 잘 훈련된 청의 군대 앞에서는 역부족이었다. 의기양양한 오랑캐는 점점 학암포 앞바다에까지 와서 잠시 멈추고는 우리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국운이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처해 있었다. 폭풍전야라 했던가, 적군이 하룻밤 잠잠하는가 싶더니 다음 날 새벽, 육지를 향하여 노를 저으면서 화약총을 쏘아대는 것이었다.
벼란간 천둥이 치듯 하는 굉장한 폭음에 바다는 깨어났고 총소리는 섬들을 흔들었다.
천지가 개벽하듯 바다는 온통 소용돌이 속에 휘말렸다. 바로 그 때였다.
대나무가 무성한『대뱅이』가 옆에 있는『굴뚝뱅이』를 불렀다.
이『굴뚝뱅이』는 굴뚝처럼 생겼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여보게, 굴뚝뱅이.” “왜 그러나?” “총소리가 들리지.
오랑캐가 쳐들어온 거야, 아름다운 우리 국토를 저놈들이 짓밟고 있어!” “무슨 소린지 알아.” ”우리,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그렇구 말구!” ”우리 힘으로 적을 물리치세.” 이 소리를 건너편에서 듣고 있던 『거먹뱅이』가 말했다. “나두 한몫하겠네.” “나두!” “나두!” 『돌섬』도 『수리섬』도 『질마섬』도 자기들도 적을 물치는데 일조를 하겠노라고 소리쳤다. “고맙네.” “고마워.” 여섯 섬들이 전투준비를 위한 의논을 시작하려는데, 느닷없이 섬 하나가 남쪽으로부터 고속으로 다가오며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나도 한몫 끼워주시오.” 여섯 섬들이 놀라 쳐다보니 처음 보는 섬 하나가 둥둥 떠오며, 자기도 `나라가 위태로운데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여러분들과 힘을 합하여 싸울 것을 각오했노라'고 크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장한 일이오.
그런데, 노형은 어디서 왔소?" "나는 전라도 앞바다에서 왔습니다." "반갑소."
쌍수를 들어 환영하오.” 일곱 섬은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통성명을 하고는 작전회의에 들어갔다.
일곱 섬들이 적을 물리칠 계책은 금방 정해졌다. 대나무가 무성한『대섬』이 맡은 임무는 대나무를 흔들어 군기가 가득 펄럭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굴뚝섬의 임무는 굴뚝에서 불꽃을 뿜어 마치 군함이 진격하는 모양을하여 적군에게 보이는 것이었다. 수레섬의 임무는 군사들이 수레에 가득 타고 달려드는 것 같이 보이기 위해 수레를 가득 실은 군함으로 변장하는 것이었다. 그뿐인가, 돌섬이 맡은 일은 주먹만한 돌을 적의 함대에 마구 날려보내어 마치 총알이 날아오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었다. 나머지 섬들은 크고 무섭게 보이는 전함으로 변장하여 적으로 하여금 겁을 먹게 한다는 것이 일곱 섬의 전략이었다. 적군은 일격에 우리의 국토를 손에 넣은 양 사납게 물살을 가르며 진격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 무슨 괴변인가! 지금까지 섬으로만 알고 있었던 섬들이 섬이 아니고 모두 전함이 아닌가! 굴뚝에서 뿔꽃이 튀었다.
대섬에서 깃발을 펄럭이며 소리치면서 달려들고 있었다.
돌섬에서 쏟아져 나오는 돌들은 대포알보다 위력이 더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전함마다 수레가 가득 실렸고, 창검이 번득이고 있었다.
그야말로 대군이었다.
큰 전함은 가득히 대군을 싣고 전투태세를 갖추어 달려오고 있지 않은가? “큰, 큰일 났습니다.” 척후병이 사시나무 떨듯 하면서 대장에게 보고했다. “적의 함대가 굉장한 위력으로 우리를 향하여 질주해오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냐? 적의 함대는 한 척도 없다고 보고한 것이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잖느냐?” “하오나, 상황이 급박하옵니다.” 갑판에 오른 대장이 앞을 바라보니 흐끄므레 밝아오는 수평선으로 부터 그야말로 놀랍고도 남을 거대한 함정이 그것도 일곱척이나 몰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돌섬에서 쏘아대는 돌 총알이 눈앞에 핑핑 떨어지며 더러는 함대 위로 날아와 군사를 쓰러뜨려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었다. “복병이다.” “섬으로 위장한 적의 대 전함이다.” “승산이 없을 것 같습니다.” “후퇴하라!” 오랑캐의 함대는 허겁지겁 달아나기 시작했다. 후일 포로로 잡힌 오랑캐의 말을 빌리면, `그 때 그 섬들은 정말 군함과 똑 같았다'고 술회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 군사들이 학암포 해변까지는 왔으나 적의 전함이 모두 퇴각하고 없어 그를 이상히 생각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세월은 흘러 세계정세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국가간의 교역이 성행하고 멀게만 느껴지던 일본이나 중국이 바로 이웃이 됐다.
무역선이 드나들고 색다른 문화가 우리에게 선보이게 됐다.
개화의 눈이 트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중국과 일본과의 국교를 맺고 화친의 교역이 이루어지는가 했지만 그것만도 아니었다.
이들 나라들은 우리나라에게 언제나 흑심을 품고 속국으로 삼을 방편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조정은 여기에 대처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당쟁만 계속하고 있었다.
정부는 부재하고 국민은 도탄에 빠졌다. 이런 틈을 탄 일본은 그 세력을 점점 확산하고 침략의 근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동학혁명이 일어났다.
동학의 수장 전봉준은 나라의 부패와 관리들의 횡포에 항거하고 나아가 외세의 팽창을 거부했다. 1894년 동학군은 삽시간에 전국 곳곳을 점령하고 조정이 있는 한양으로 진격했다.
당황한 것은 조정이었다.
서둘러 군사를 보내어 동학군을 막으려 했지만 관군은 승리보다 패하고 도망가기가 일쑤였다. “이러다가는 동학군에게 전국이 함락될지도 모르겠소!” “어떻게 하면 좋겠소?” “청국의 도움을 받읍시다.” 군관회의에서 얻어진 결론은 청의 도움을 받자는 것이었다.
서둘러 청에게 원군을 청했다.
그러나 이미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치고 있던 일본은 청의 군사가 원군으로 오는 것을 좋아할리 없었다.
양국의 흑심은 결국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말았다. 우리 국토를 제물로 그들의 세력 다툼은 끊이지 않았고, 우리 백성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었다.
구원의 요청을 받은 청은 좋은 기회라 여겨 당장 원군을 보냈다.
원군의 명분이야 동학군을 진압한다는 것이었으나 그 속셈은 우리 국토를 넘보는 것이었다. 한편, 일본은 청의 군대가 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고, 서둘러 해군을 서해로 파병하기에 이르렀다.
바다에서 전쟁을 일으켜 퇴각시킨다는 작전이었다.
이런줄도 모르고 청의 군대는 수 십척의 전함을 이끌고 서해안까지 접근하고 있었다.
그때 청의 군대가 상륙하려고 정한 상륙지점은 역시 학암포였다. 이것은 분명 망국의 조짐이었다.
강대국의 양 세력이 우리나라를 마음대로 흔들어 놓는다면 필히 우리는 그들의 속국에 불과한 위기에 처하게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소국인 우리에겐 이들의 뻔한 속셈을 저지할 힘이 없었고, 나라를 사랑하는 충신들의 한숨만 더해갔다. 청의 군대가 학암포 앞바다, 그러니까 일곱 섬 근처에 이르렀을 때였다.
잠잠 하던 대섬이 또 여섯섬을 불러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할 일이 또 생겼소.” “옳은 말이요, 우리의 국토를 저들의 전쟁터로 만들 수는 없소.” “쫓아버립시다!” “우리의 작전은 전과 동일하오.
오랑캐를 물리쳤던 그 솜씨를 다시 한번 발휘합시다!” 일곱 섬이 전투준비를 마치고 적함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윽고 청의 군함이 야음을 틈타 접근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풍파가 일며, 굴뚝섬에서 시뻘건 불꽃이 내뿜어지는가 하면 수많은 돌멩이가 눈뜰 새도 없이 날아드는 게 아닌가? 그뿐인가 질마섬 병마의 말굽소리에 섞여, 군사들의 함성이 새뱅이를 흔들어 놓는 것이었다. “복병이다!” “일본놈의 군대다.” “일단 후퇴다!” 청은 일본 군함이 숨어 있다가 나타난 것으로 오인하고 선수를 북으로 돌려 달아났다.
좋아라 한 것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청의 군대가 싸우지도 않고 달아나는 이유를 알 리 없었지만 일본군이 무서워 달아나는 것이라 착각하고 그 뒤를 쫓았다.
쫓기고 추격하고, 그들은 결국 경기도의 풍도 앞바다에서 접전했다.
이 싸움이 유명한 풍도전쟁이었는데, 이 싸움에서 청은 크게 패하여 달아났다.
하마터면 육지에서 참혹하게 벌어질 청일전쟁을 바다에서 싸우게 한 결정적 역할을 일곱섬(七防夷)이 했다고 후세 사람들은 말했다. 한토막 전설이지만 이 이야기는 약소국가의 서러움과 애국의 길이 무엇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칠뱅이는 관송팔경(貫松八景)으로 꼽히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지런히 서 있다. 또한 칠뱅이는 지금도 나쁜 무리들이 우리 국토를 넘보고 있지 않는가 두 눈을 부릅뜨고 밤낮없이 오랑캐를 방어하고 있는지 모른다.
원북면 방갈리에는『작은골』이라는 마을이 있다.
이름 그대로 대여섯 가구쯤 사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은 산으로 둘러쌓여 있고, 마을을 안고 있는 비교적 높은 산은『국사봉』이라 부른다.
옛날에 이 산에는 사찰이 있었다하며, 사찰 안에는 크고 작은 철마의 상이 여러개 있었다 한다. 이 철마상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또 철마상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정설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없고 다만 전설로만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사찰에는 쇠로 만든 도리깨가 있었다 하는데, 절에서 타작을 할 일도 없었을텐데 쇠도리깨가 왜 절안에 있었는지에 대한 것도 전설로만 전해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바로 철마와 쇠도리깨가 국사봉의 암자에 왜 있었는지 밝혀 보는 것이다. 옛날, 우리 고장에는 오랑캐의 침략이 빈번했다 한다. 오랑캐로 인하여 우리고장은 오랜 세월 수난을 당해왔는데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방황할 때의 일이다.
어느 해에도 오랑캐가 몰려들었다.
그러나 이 사나운 침략자들을 물리칠 힘이 우리에게는 없었다.
도처에서 노략질을 일삼고 부녀자를 폭행하는 일을 당하면서도 그들의 칼날 앞에 벌벌 떨기만 하고 있었다. 그때 팔을 걷고 나선 건장한 청년이 있었다.
이 청년은 힘이 세고 정의롭고 용기가 충만한 인물이었는데, 오랑캐의 횡포를 막아보겠다고 나섰다.
이 청년은 동네 청년들을 모았다.
그렇지 않아도 오랑캐를 물리칠 궁리에 잠겨있던 애국청년들이 누가 나서지 않나 기다리던 중이어서 하룻만에 수십명의 청년들이 모였다. “우리 힘으로 오랑캐를 물리칩시다!” “좋소!” 그러나 막상 전쟁터로 나가려 하니 무기가 없었다.
의기와 의분과 충절의 마음만 가슴에서 끓어오를 뿐 그들에게는 만만한 칼 한 자루도 없었다.
기껏 모은 무기라는 것들이 성능이 좋지않은 활 몇 개와 단검 몇 자루, 그리고 나머지는 몽둥이 뿐이었다. “이래가지고서야, 어찌 적을 물리칠 수가 있겠소.” “옳은 말이요, 이 보잘것 없는 무기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을 것같소.” “그러나 저러나 무기는 이렇다손 치고, 적들은 잘 길들인 말을 타고 종횡무진하는데 우리는 무엇을 타고 싸운단 말이요!” 그러고 보니 말 한 필도 없었다.
섣불리 덤볐다가 적의 말굽아래 짓밝히고 말 판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그러나 물러설 수는 없소.” 청년들은 싸우기로 결심하고 날이 밝으면 싸움터로 나가기 위하여 준비를 서둘렀다. 그날 밤, 청년 장수가 꿈을 꾸었다.
꿈에 희고 긴 수염을 늘어뜨린 노인이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다. “젊은이, 내일밤 자정을 기하여 국사봉 암자를 찾아가게.
거기에 가면 젊은이가 찾고 있는 반가운 것들이 있을꺼야.” “반가운 것이라면?” “싸움터에서 필요한 병마와 병기가 거기 있다네.” “정말입니까? 노인장.”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누구신가요?” 그러나 노인은 사라졌고 청년은 노인을 부르는 자기 소리에 놀라 그만 꿈에서 깨어 났다.
꿈이 하도 또렷하고 기이하여 젊은이는 잠이 오지 않았다.
노인의 소리가 자꾸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다음 날 젊은 장수는 청년들에게 출전을 하루 늦추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청년들은 꿈만 믿고 대사를 그르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그날 밤 자정 젊은이들은 국사봉 암자로 갔다.
밤이 칠흙처럼 어두웠다.
하늘에 별빛만 반짝이고 주위는 고요했다.
암자에 오르는 동안 숲속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그런데 암자에 가까이 갔을 때, 갑자기 수십 필의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지 않는가? “이게, 무슨 소리지?” “말발굽 소리다!” 젊은이들이 허겁지겁 암자 마당에 이르러 보니 수십필의 말이 고개를 쳐들고 젊은이들을 향하여 일제히 울음을 터트렸다. “휘잉!” 젊은이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그리고는 앞을 다투어 말고삐를 하나씩 잡았다.
그 때 어디선가 우렁찬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고삐를 놓고 암자의 광문을 열어라.
거기 쇠도리깨가 있을 터이니, 그 도리깨가 곧 적을 물리칠 무기가 되느니라!” 젊은이들이 이 소리에 우르르 몰려가 암자의 광문을 열었다.
아아! 거기에는 노인이 말한대로 많은 쇠도리깨가 빛을 내며 서있었다.
젊은이들은 저마다 쇠도리깨를 하나씩 집었다.
다시 소리가 들렸다. “자, 지금 바로 야음을 틈타 적진으로 진격하라.
적이 나타나면 쇠도리깨를 휘둘러 섬멸하되, 한가지 유의할 점은, 전쟁에서 이기면 반드시 말과 쇠도리깨는 날이 새기전에 제자리에 갖다 놓아야 하느니라.” “진격!” 말이 달렸다.
그러나 달린다기 보다는 나른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참으로 빨리 달리고 있었다.
금새 적진에 다달았다. “모조리 섬멸하라!” 젊은이들은 닥치는대로 쇠도리깨를 휘둘렀다.
불의에 습격을 받은 오랑캐들은 혼비백산 도망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도망가는 적군을 쇠도리깨가 그냥 두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불과 몇 시간만에 적군은 섬멸됐고, 살아남은 적은 생포를 해서 볼기를 쳐 쫓아버렸다. 젊은 장수와 젊은이들은 의기양양하게 말을 타고 암자로 향했다.
노인의 말대로 날이 새기 전에 말과 쇠도리깨를 제자리에 갖다 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말과 도리깨를 국사봉 암자에 갖다 놓고 산을 내려올 때는 아직도 먼동이 트지 않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자기들이 적을 물리친 일이 꿈만 같았다.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싸움을 할때 말들이 그렇게 용맹스럽고 날쌘 것이라든지, 줄잡아 쌀 반가마니의 무게가 될성싶은 쇠도리깨를 파리채 내둘듯 한 일이라든지, 또 자신들도 지칠줄 모르는 힘이 솟아오르던 일들이 아무래도 예삿일이 아닌 것 같았다. 젊은이들은 마을로 돌아와서 잠을 자지 않고 지금까지의 이해할 수 없는 일들과 또 적을 무찌를 때의 무용담을 나누면서 밤을 새웠다. 얼마후 먼동이 터왔다.
동쪽 하늘이 붉게 타오르면서 햇살이 퍼지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은 누가 가자고 한 것도 아닌데 국사봉 암자로 발길을 향했다.
어제밤 일들이 궁금했다.
도대체 그 할아버지는 누구이며, 또 암자에 수십필의 말을 기르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암자에 도착했을 때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말도 쇠도리깨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히 여긴 젊은이들이 광문을 열어보았다.
광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 많은 말들이 뛰고 있던 흔적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말발굽자국 하나 없었다.
암자 마당은 언제 깨끗히 쓸어 놓았는지 티끌 하나 없었던 것이다. “어찌된 일이야?” “누가 아니래.” “우리가 꿈을 꾼 게 아닌가?” 젊은이들은 자기들이 지금까지 싸웠던 일들과, 이상한 노인이 나타난 일들과, 지금 암자 마당에서의 변화가 무엇인지 몰라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때 암자 안에서 목탁소리가 들려왔다.
이 암자를 지키는 늙은 중의 아침 염불이었다.
젊은이들은 목탁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랬더니 불상앞에 조그마한 철마 한 쌍이 놓여 있고, 그 옆에 역시 조그마한 쇠도리깨 하나가 세워져 있지 않은가. 젊은이들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의구심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암자 마당에 병마가 있다고 가르쳐준 그 노인은 아무래도 부처님일 것이라 생각했으며, 부처님의 영험으로 자기들이 오랑캐를 쫓아냈다는 것과, 지금 보이는 철마와 쇠도리깨가 어제 자기들이 전쟁에서 사용한 것이라는 사실은 짐작할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우리 태안지방에서 활개를 치던 오랑캐는 사라졌고, 국사봉의 암자도 허물어 졌는데, 지금도 산봉우리에는 절터가 남아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 암자에 있었던 철마와 쇠도리깨가 국사봉 아래에 사는 모씨의 집에 있었다는데, 지금은 간곳이 없다 한다. 조금은 허황된 이야기 같지만 국난이 있을 때마다 온 백성이 합심하여 나라를 지킨 우리 민족의 민족성을 잘 나타내준 이야기라 생각되며, 불교를 숭상하던 시대의 신앙심을 엿보게 하는 그런 전설이 아닌가 한다.
역사 속에서 훌륭한 정치가와 문장가와 위인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신라 때 최치원이라는 분을 후세 사람들이 존경하는 이유도 그 분의 훌륭한 문장가적 자질 때문이다. 최치원은 신라 경문왕(28대)때 당나라에 유학하며 크게 명성을 떨친 분인데, 나이 어려 당에서 과거에 급제하고 당나라에게 큰 공을 남기고 돌아온 대장문장가요 사상가요 정치가였다. 최치원이 당나라에 있을 때 『황소』라는 도둑의 우두머리가 나라를 어지럽혀 당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토황소격문』이라는 글을 써서 황소가 벌벌 떨게 했으며, 결국 황소의 난을 평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니, 이 하나를 보아도 그분의 문장이 얼마나 뛰어났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고국에 돌아와 한 동안은 벼슬을 하였으나 말년에는 높은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에만 전념했는데, 그분이 남긴 『계원필경집』 그리고 『사륙집』 등은 불후의 명저들이다. 후일 그분은 가야산에 들어가 여생을 보냈는데 전설에 의하면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한다. 옛날에 그 분이 잠시 서산군수로와 있었는데, 지금 지곡면에는 부성사라는 그분의 덕을 기리기 위한 사당이 있고, 해마다 후손과 유림이 모여 제를 올리고 있다. 이 이야기는 최치원이 서산군수로 있을 때의 이야기인데, 이야기의 주인공이 원북면 사람이라는 점에서 우리 고장의 전설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어느 날 나이 60이 넘어보이는 사람이 서산군수를 찾아왔다.
행색으로 보아 부자집 주인 같았는데 그의 얼굴은 비통함으로 가득했다. “무슨 일로 찾아왔소?” “군수님, 이런 억울하고 분할데가 어디 있습니까?” “무엇이 그리 억울하단 말이요?” “예, 저에게는 늙으막에 아들 둘을 두었습죠.
60이 넘어 얻은 아들이라 불면꺼질까 애지중지 키웠는데, 글쎄 며칠전 두 아이가 모두 시름시름 앓더니 세상을 뜨고 말았답니다.” “거 참, 안됐군요.” “제가 오늘 군수님을 찾아 뵈온 것은 이 억울한 사연을 말씀드리고 염라대왕을 군수님께 고발하려는 것입니다.” “염라대왕을 고발한다?” “그렇습니다.
한 아이라면 몰라도 아까운 두 아들을 데려간 염라대왕의 불공평한 처사를 고발하려는 것입니다.” “듣고보니 참으로 안됐소.
이왕 고발이 들어왔으니 못들은 척 할수는 없고, 내가 3일후 염라대왕을 이곳에 모실터이니 그때 부르거든 당신이 와서 직접 억울한 사정을 말해 보시오.” 이렇게 해서 그 사람을 돌려보냈다.
옆에서 이 소리를 듣던 아전들은 기가 막혔다.
세상에 별 해괴망칙한 고발도 다있고 또 아무리 영특한 군수라 하지만 염라대왕을 불러 주민의 억울한 사정을 듣게한다니 이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전들은 군수가 너무 자만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군수께 물었다. “군수님, 어쩌자고 이런 고발을 받아드렸습니까? 만일 염라대왕을 불러오지 못한다면 어찌하시렵니까?” 그러자 최군수는 태연하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너희들은 걱정할 게 없느니라.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라.
지금부터 우리 고을에서 제일 빨리 달리는 말 한 필을 구해라.
그리고 말 잘타는 군졸을 불러 염라대왕을 마중가도록 하여라.” 군수는 점점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지만 군수의 명령이니 아전들은 천리마 한 필을 구하고 군졸 한 사람도 대령했다. “너는 사흘 후 그믐날 밤에, 이 말을 타고 운산쪽으로 가거라.
가다보면 염라대왕께서 이리로 오고 있을 터이니 모시고 오도록 해라.” “정말 염라대왕이 오시는 겁니까?” “가 보면 알 것이다.” 군졸은 사흘후 그믐 밤에 운산쪽으로 말을 달렸다.
길은 험하고 사방이 캄캄하여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지만 다행이 천리마가 천리마답게 어둠을 뚫고 달렸다.
군졸은 으시시 소름이 끼치고 무서웠다.
그도 그럴 것이 한밤중에 염라대왕을 마중 나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무서운 일이 아니겠는가? 군졸이 가슴을 조이며 가고 있는데 갑자기 앞이 훤하게 밝아지면서 웬 사람이 말을 타고 오는 것이었다.
그의 차림으로 보아 사람은 분명 아니라는 생각에 군졸은 그 앞에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염라대왕이십니까?” “그렇다네.” “저를 따라 오십시오.” 군졸이 앞서 가는데 아까와는 달리 앞이 훤하니 밝았다.
염라대왕에게서 나오는 빛이 길을 밝혔던 것이다. 관청에 오니 이미 염라대왕을 고발한 노인이 와 있었다.
최치원 군수는 문앞에까지 나와 염라대왕을 맞아 들였다. “이거, 대왕님을 오시라 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오, 훌륭하신 군수께서 부르시니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나요.
그러나 저러나 무슨 일로 나를 부르셨소?” “다름이 아니오라, 이 노인이 대왕을 걸어 저에게 고발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재판을 할려고 하는데, 대왕께서는 피고가 된 셈입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들어봅시다.” “자, 그럼, 노인께서 말씀을 드리지요.” 군수가 억울하다는 노인에게 발언권을 주자, 노인은 `자기 아들들을 왜 한꺼번에 데려갔느냐'고 따졌다. 이 소리를 듣던 염라대왕은 갑자기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이놈, 너는 네 아들의 죽음만 억울하고, 다른 사람의 아들이 죽은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이냐?” “그건 무슨 말씀이신가요?” “이놈, 몰라서 묻느냐, 너는 지금부터 13년전에 원북땅 어느 곳 에서 주막을 한 일이 있지?” “그렇습니다만.” “그 때, 네놈의 주막에 들렸던 쌍둥이 형제를 어떻게 했느냐?” 염라대왕의 이 말에 노인은 얼굴색이 창백해지며 몸 둘 바를 몰라 쩔쩔맸다.
이 사람이 이처럼 몸을 떠는 이유는 이러했다.
이 노인이 원북 양산쯤 되는 곳에서 주막집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밤이 꽤 깊었는데 손님이 찾아왔다. “쉴 만한 방이 있습니까?” 이렇게 방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은 홍안의 소년이었는데, 한 사람이 아니고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두 청년의 얼굴이 쏙 빼다 닮았다.
쌍둥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등에 봇짐을 하나씩 지고 있었는데 값비싼 비단봇짐이었다.
주인은 한 눈에 이들이 돈이 많은 보부상이라는 것을 알고 못된 마음을 먹기 시작했다. “방이 있는데 들어들 오지?” “고맙습니다.” 두 청년이 저녁을 먹고 전대에서 돈을 내어주는데 전대에 돈이 가득하지 않은가? 이를 본 주인의 눈에 불꽃이 일었다.
아니 살기가 일고 있었다. 그날 밤, 이 꽃다운 두 목숨은 못된 주막집 주인의 칼날 앞에서 사라졌다.
주막 주인은 부엌 한쪽을 깊게 파고 시체를 매장했다.
그때 빼앗은 돈으로 이 늙은이는 지금까지 편하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놈, 왜, 말이 없느냐?” 염라대왕이 다시 호령하자 그제서야 노인은 벌벌 떨면서 용서를 빌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요.” “이 못된 놈, 그 추한 목숨이 그렇게도 아까우냐? 내 당장 네놈의 목숨도 가져가고 싶다마는 아직 명이 조금 남아 참는 것이다.
다만 네 두아들을 네게 주었다가 다시 데려옴으로써 자식을 잃은 슬픔이 어떠한가를 알려주고, 또 네게도 고통을 주기 위하여 너의 쌍둥이를 데려 갔느리라.
나는 지금 그냥 가지만 여기 계신 현명하신 군수께서 네 죄를 다스릴 것이다.” 이렇게 말한 염라대왕은 홀연히 사라졌다.
모여섰던 사람들은 이 기막힌 사실에 혀를 내두르고 있는데 최군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여봐라, 이 늙은이를 당장 하옥시키고, 몇 사람은 이 늙은이집 부엌을 파 보아라.” 군졸들이 노인을 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노인집 부엌을 파 보았더니 거기에는 두 젊은이의 시체가 아직도 그대로 묻혀 있었다. 욕심에 눈이 어두운 자의 비참한 말로였다.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하면 자기 눈에도 피눈물이 난다.
세상에는 비밀이 없는 법, 이를 본 사람들의 입에서는 이런 말을 한마디씩 했다. 그런데 과연 염라대왕은 최군수가 불러서 왔을까? 후일 사람들은 도통한 최치원 군수가 이 노인의 죄를 통찰했고, 헛개비를 만들고 도술을 부려서 염라대왕을 만들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지금 원북 양산의 어느곳인지 그 주막이 있을리 없지만, 이 인과응보의 법칙은 오늘날의 험난한 세태에 경종으로 남아있다.
험준한 산으로 둘러쌓인 양산마을은 평화롭기만 했다.
기름진 농토가 넓게 펼쳐있고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냇물은 이 마을의 풍요를 대변하고 있었다. 천성이 부지런한 양산마을 사람들은 천혜의 삶의 터전을 가꾸어 나가며 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먹을것 넉넉하고 인심 후하고 산수가 수려하니 모두가 좋은 것 뿐이었다. 산수좋은 고장은 예부터 장수하는 사람이 많고 미인이 많다는 얘기가 있다.
그래서 인지 이 마을 쳐녀들은 모두 양귀비였다.
이웃 마을 총각들이 이 동네 쳐녀와 결혼하고 싶어 안달을 하는 이유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험준한 산은 산세가 너무 험악하고 산림이 울창하여 아무도 이 산을 넘어 본 사람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산에 대한 지식과 산 너머에 있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 무지할 뿐이었다. 이 마을에서 다른 마을을 잇는 유일한 길은 동쪽으로 빠끔히 뚫려 있는 길 뿐이었다. 이 길을 따라 수십리를 걸어가면 넓은 들이 나타나고, 이 들을 건너가면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이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은 양산마을을 신비스러운 별천지로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가 양산마을과는 왕래가 별로 없어서 양산마을에 대하여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를 만들어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산마을 사람들의 외부와의 접촉도 그렇게 잦은게 아니었다.
모든 생활필수품은 거의가 자체 해결이 되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는 일은 공산품 구입을 위하여 수십리 떨어진 읍내에 가는 것이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외부와 단절된 양산마을이었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살아가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줄잡아 100여 가구가 되는 인구, 거기에 넉넉한 식량과 자연환경이 좋았고, 동네 사람들이 서로 믿고 단결하는 가족적인 분위기가 두드러져 그야말로 별유천지 비인간의 마을처럼 평화롭기만 했다. 젊은이들의 결혼도 거의가 한 동네에서 성씨가 다른 사람들끼리 이루어졌는데, 그러다 보니 모두가 친척과 사돈으로 맺어져 있어 앞으로는 다른 마을 사람들과 혼인을 맺어야 할 실정이었다. 다시 양산마을의 뒷산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야겠다. 이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잇는 길은 동쪽으로 빠끔이 뚫려 있는 길이 유일한 길이었는데, 길 옆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어져 있어 이 양산마을은 호수와 같은 지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여간에 이 마을 사람들은 가까이에 있는 뒷산에 대하여 아무것도 아는 바 없이 태평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 마을에 이상한 소문이 일고 있었다.
그것은 뒷산에 대한 의구심과 호기심, 그리고 신비스러움이 섞인 괴상한 말들이었다. “뒷산에 산신령이 살고 있대.” “산신령이 천년 묵은 이무기라면서?” “이무기가 아니라 호랑이라던데.” “아니야, 여우래.
천년 묵은 여우래.” 여인들이 두 세명만 모이면 뒷산에 대한 소문이 말에 말을 얹어 눈덩이처럼 부풀어 올랐다.
여인네들 뿐만아니라 사랑방에 모인 남정네들도 이 같은 소문에 호기심이 일었다. “여우가 도술을 부려 사람으로 변한다는데 참말일까?” “아따, 이사람, 누가 보았대? 그런 엉터리 소문을 믿고 있나?” “아니야, 호랑이고 여우고 오래 묵으면 이상한 짓을 한다잖나.
아, 누구드라, 옳지, 범이 아버지도 밤늦게 뒷간에 갔다가 여우에게 홀려 밤새 논배미에서 헤매다가 날이 샜다지 않던가? 헛 소문이 아닐지 몰라.” 이러한 소문이 쉴사이 없이 퍼지고 있던 어느 날, 그 소문이 사실인 것을 뒷받침 하듯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소가 없어졌대!” “소가? 누구네 소가?” “돌쇠네 것이래.” “어쩌다가?” “모르지, 외앙간에 피가 흘렀는데, 그 피가 뒷산쪽으로 이어져 있었다는 거야.” “그렇담, 사람의 짓이 아니잖아.” “사람이 어떻게 소를 산으로 가져갈 수 있겠나.” 그러나 이 마을의 소는 돌쇠네 소 뿐만아니라 자고 나면 한 마리씩 오간데없이 사라지고 있었다.그것도 큰 소만을 골라 가져가고 있어서 농사철이 돌아오는 봄철이 되자 농사일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소가 없어지는 까닭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소문대로라면 산에 요괴가 있어 짐승을 잡아간다고 보아야 하는데, 이것은 굉장한 공포가 아닐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불안과 공포 속에서 편안한 날이 없었다.
밤만되면 외출을 삼가고 문을 잠그고 숨어 살듯 하였지만 날이 새면 으례히 소 한 마리가 없어지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이제는 밤이 두렵기까지 했다. 이렇게 되자 양산 마을에는 소가 거의 없어졌고, 텅빈 외양간에는 섬찍한 살기만 감돌고 있었다. 이러다간 동네가 폐동이 되겠어.” “누가 아니래, 이러고만 있지 말고 대책을 세워야 해.” “대책을 어떻게 세운다지?” “젊은 청년들을 모아 방위대를 조직하면 어떨까?” “그렇게 하는게 좋겠어.” 다음 날, 이 마을 젊은이들은 모두 촌장 집으로 모여 괴물과 싸울 것을 다짐하고, 조를 짜서 밤새 횃불을 밝히며 감시하기로 했다. “무기가 있어야 해.” “칼과 활을 만들자.” “창과 방패도 필요해.” 키고, 낮이면 칼쓰는 법과 활쏘는 법을 익히는 무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그러나 젊은이들의 충천한 사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소가 없어지는 사건은 여전히 계속됐다.
횃불을 대낮처럼 밝히고 시퍼런 칼날을 번득이며 보초를 서고 있는데도 요괴는 어느틈에 어디론가 나타나 소를 잡아가고 있었다. “이거, 헛수고만 하는 게 아닌가?” “그런것 같아, 우리의 힘으로는 막을 길이 없는 것 같아.” “어떻게 하지.” “나도 모르겠어.” 마을 사람들은 맥이 풀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이 날 밤도 동네 청년들은 그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전처럼 망을 보기로 하고 횃불을 준비하여 곳곳에 불을 밝히면서 감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밤이 이슥할 때였다.
망을 보던 한 사람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모두의 눈이 그 쪽으로 쏠렸다.
아! 거기에는 괴상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구척장신인 거구의 한 장수가 갑옷을 입고 손에는 장검을 들고 새가 나르듯 훌쩍 마을로 날아오더니, 한 집의 외양간에서 소 한마리를 번쩍 들고 다시 산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저건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 아닌가, 분명 사람이지?” “사람이야!”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의 상이야” “번개처럼 날쌔구먼!” “그러나 저러나 저렇게 훌륭한 장군이 어떻게 소도둑이 됐을까?” “모를 일이야!” 뜻하지 않은 소도둑이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데에 마을 사람들은 실망이 더 컸으며, 도둑에 대한 궁금증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다시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아무래도 그 도둑은 산적이 틀림없소.” “무술이 뛰어난 산적일 것이요.” “우리도 무술을 더 닦아야 하오.” “그러나 그 날쌘 무사를 어느 재주로 당하겠소.” “그렇다고 그냥 앉아있으려오? 뭉칩시다.
싸웁시다.” 젊은이들은 적이 괴물이 아니라 사람으로 정체가 밝혀진 이상 전보다는 마음의 여유와 용기가 더했으며, 모두가 뭉치면 능히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아무리 철통같은 감시를 해도 어느 사이에 왔다 갔는지 감쪽같았다.
매일 훈련을 하고 대장간에서 만들어 놓은 칼과 창, 활이 있지만 한 번도 써보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이 마을에는 소가 점점 줄어 들었고 씨가 마를 판이었다.
처음에는 큰 소만 가져가더니 나중에는 송아지까지 마구 잡아가는 것이었다. 수난을 당하는 것은 소뿐만 아니었다.
소가 거의 없어지자 이번에는 닭이며 돼지며 집짐승 모두를 가져가는 것이었다. 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동네가 망하겠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해.” 사람들은 마을을 뜰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도저히 무서워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아! 그런데 그 보다도 더 무서운 일이 이 동네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이 없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도 남자가 아닌 여자가, 여자 중에도 처녀가 매일밤 한 사람씩 없어지는 것이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밤이 무서웠다.
자고 나면 밤사이에 처녀 한 사람이 없어지는 이 괴이한 사건은 온 동네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고 있었다. “어젯밤에는 분이가 없어졌어.” “벌써 세 사람째가 아닌가.” “이 동네를 떠나야 해.” 사람들은 이 동네를 떠날 결심을 하였고, 이주할 채비도 서두르고 있었다. 한편, 양지바른 윗쪽에는 곱단이라는 처녀가 살고 있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곱단이는 이름 그대로 곱지않은 구석이 없었다.
마음이 곱고 얼굴이 곱고 살결이 곱고 모두가 고운것 뿐이었다. 곱단이 과년하여 결혼할 나이가 됐는데, 곱단이에게는 아랫마을 에 용범이라는 사랑하는 청년이 있었고, 장래를 약속한 사이었다.
용범이라는 청년도 그 이름처럼 용처럼 날렵하고 호랑이처럼 용감하여 장사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용범이도 곱단이처럼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효성이 지극하여 동네 사람들로부터 효자라는 소리를 듣는 젊은이었다. 근면하고 성실하며 건장한 용범은 이 마을의 으뜸 청년으로 마을 청년들을 이끌어갈만큼 통솔력도 있었다.
용범과 곱단의 사랑은 온 동네가 다 아는 사실이었고, 금년 가을 결혼식을 성대히 치룰 것이라며 국수먹기를 벼르고 있는 처지였다.
그런데 호사다마라 했던가.
갑자기 곱단이 괴물에게 납치를 당하고 말았다.
청천벽력과 같은 충격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용범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었다. “이놈의 괴물, 내손으로 처치하고 말겠다.” 다음 날 용범은 등에 활을 메고 긴 칼을 차고 뒷산을 향해 올라갔다.
그러나 산을 오르기에는 힘이 벅찼다.
깎아지른 절벽을 기어오른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솔포기와 나무뿌리를 잡고 의지하며 산을 오르는 용범의 온 몸에서는 땀이 비오듯 쏟아졌고 손과 발에는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대로 포기할 용범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곱단이 지금 저 산속에서 무슨 변을 당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고, 그일을 생각하면 용범의 분노가 한없이 끓어 올랐다.
미끄러져 떨어질뻔한 위험한 순간들을 여러번 겪으며 용범은 드디어 절벽을 오르는데 성공했다. 날이 샐 무렵부터 오르기 시작했는데 해가 서산마루에 걸려 있을 때쯤에야 절벽의 정상에 올랐고, 용범은 어떤 승리감으로 잠시 곱단을 잊기도 했다.
용범은 산을 살펴 보았다.
처음 보는 뒷산은 수목이 울창하였고, 끝없이 산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전혀 닿지않은 원시림처럼 빽빽한 숲은 길이 하나도 뚫리지 않아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금방이라도 사나운 짐승이 뛰어나올 것처럼 스산한 분위기마져 감돌고 있었다. 그렇다고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가야만 하는 것이었다.
산속 깊이 들어가면 필경 어떤 미지의 세계가 있을 것이고, 거기에 곱단이가 있을 것이라는 신념도 생겼다.
그는 성큼성큼 숲속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갈 수록 산림은 무성하여 사람이 들어갈 틈을 주지 않았다.
용범은 등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나뭇가지를 자르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얼마쯤 그렇게 했을까, 날이 어두운 것을 보면 몇 시간 그렇게 숲과 싸운 모양이었다.
용범은 날이 어두워 더이상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용범은 꿈을 꾸었다.
긴 수염을 날리는 노인이 꿈에 나타나더니 용범에게 말했다. “지금 너의 행동은 무모한 짓이다.
그 괴물은 무서운 괴물이니 되돌아 가도록 해라.” “그럴 수는 없습니다.
기어히 괴물을 잡아 곱단이를 구하고 마을의 평화도 되찾아야 합니다.
노인장! 노인장께서 누구신지 모르지만 저 좀 도와주십시오.” 노인은 비장한 각오를 한 용범의 눈빛을 읽고 감동한 듯이 이런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길을 잘못 들었다.
내일 날이 밝거든 오른쪽으로 열 걸음만 걸어가거라.
그러면 괴물이 다니는 길이 있을 것이다.
그 길을 따라 가면 괴물이 사는 굴이 있느니라.” “노인장, 고맙습니다.” 용범이 머리를 조아려 노인에게 절을 하고 일어나 보니 노인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용범이 꿈에서 깨어나니 어느새 날이 밝고 있었다.
용범은 일어나서 노인이 말한 대로 오른 쪽으로 열보를 걸어갔다.
과연 노인의 말대로 거기에는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만한 길이 빠끔이 뚫려 있었다.
꿈 속에 나타난 노인이 누구였는지 용범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분이었다.
어쩌면 그 노인은 이 산의 산신령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용범은 정신없이 걸었다.
그러다가 깜짝 놀라 발길을 멈췄다.
나뭇가지에 곱단이의 옷고름이 하나 걸려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찾아 올 줄 알고 곱단은 옷고름으로 표를 한 거야.” 용범은 용기가 백배하여 지칠 줄 모르고 뛰었다. 그의 마음 속에는 오직 하나 곱단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면서 곱단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소리가 귀에 쟁쟁히 들리는 듯 했다. 얼마쯤 그렇게 뛰어갔을까.
갑자기 길이 막히면서 앞에 큼직한 동굴 입구가 나타났다.
보기만 하여도 굉장히 크다고 생각되는 동굴이 입을 벌리고 있었던 것이다. “옳지, 이 동굴 속에 괴물이 살고 있구나.” 용범은 주위를 살피며 동굴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동굴이 떠나갈 듯이 소리친 것은 사나운 범이었다.
그런데 그 범이 내지르는 소리는 호랑이의 소리가 아니고 사람의 말이라는데 용범은 놀랬다. “웬 놈이냐?” 호랑이가 다시 한 번 소리치자 용범은 정신을 가다듬고 호랑이를 노려봤다.
호랑이의 눈은 살기에 차 있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용범을 덮칠 것 같은 기세였다.
용범은 위기를 느꼈다.
한 치의 헛점만 보여도 호랑이가 공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범은 손을 뻗어 옆구리에 찬 장검을 뽑으며『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격언을 생각했다. “그렇다, 정신을 바짝 차리자.” 그의 손은 어느 새 장검을 뽑아들고 있었다.
어두운 굴 속에서도 번쩍번쩍 빛을 뿜었다.
이 장검은 양산마을에 괴물이 나타난 이후 용범의 손에서 한 시도 떠나지 않았고, 용범이 무술을 연마한 보검이었다.
아직 이 칼로 전쟁을 해보았다거나 괴물과 싸운 경험은 없지만 용범의 무술은 호랑이 하나쯤은 처치할 만한 칼 솜씨를 지니고 있는 터였다. 호랑이가 다시 소리쳤다. “웬 놈이냐고 묻지 않느냐? 그리고 이곳은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니 물러 가거라” 호랑이의 유창한 사람말을 따질 겨를이 없는 용범이었다.
그는 잔뜩 위엄을 담은 목소리로 대꾸하고 있었다. “양산마을에서 온 용범이다.
이 동굴 속에 곱단아씨를 잡아온 괴물이 살고 있지? 나는 그 곱단아씨를 구하러 왔다.
길을 비켜라.” “가소로운 놈, 우리 대왕을 어떻게 보고 하는 소리냐? 우리 대왕의 일을 방해하는 놈은 아무도 용서할 수 없다.” 말을 마친 호랑이가 달려들었다.
용범은 잽싸게 비켜서며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쉽게 칼에 맞을 호랑이가 아니었다.
호랑이 역시 번개처럼 날렵했다. 용범과 호랑이의 싸움은 쉽게 끝이 나지 않았다.
몇 시간을 그렇게 싸웠는지 모른다.
모두 지쳐 있었다.
용범의 등줄기와 이마에서는 쉴 사이 없이 땀이 흘렀다.
점점 기력이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갑자기 용범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에잇!” 그리고는 칼소리가 사납게 스쳐갔다. “쿵” 호랑이가 쓰러지는 소리가 동굴 안을 흔들었다.
용범이 이긴 것이었다.
한바탕 전쟁이 스쳐간 동굴 안은 고요가 흘렀다.
갑자기 긴장이 풀리며 현기증이 일어 났다.
용범도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얼마쯤 주저앉아 쉬고 있던 용범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굴 속으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칼과 활이 제 위치에 있는가 등과 허리를 만지며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몇 걸음을 옮기던 용범은 쓰러져 있는 호랑이를 돌아 보았다.
싸울 때는 호랑이가 얼마나 큰 놈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상관하지 않았으나 호랑이를 쓰러뜨리고 나니 호랑이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호랑이가 쓰러져 있던 자리에 호랑이는 간곳이 없고, 하얀 털을 가진 마르고 늙은 여우 한마리가 목에 칼을 맞고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용범은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그래서 눈을 씻고 다시 들여다 보았으나 거기에는 여우가 쓰러져 있는 것이 분명했다.
참으로 여우에게 홀린 기분이었다.
분명히 싸울 때도 호랑이었고, 또 사람말로 호통치던 그 우람한 소리도 호랑이의 소리였는데, 지금 그 자리에는 여우가 죽어있었던 것이다. 용범은 수수께끼 같은 이 사건에 마음속으로 혼란을 느끼며 굴 속을 향하여 걸어들어 갔다.
굴 속은 어두웠다.
겨우 앞을 가릴만큼 희미한 빛이 흐르고 있었으나 구름이 달을 가린 밤처럼 스산했다.
주위에서는 이따금 박쥐가 날고 괴상한 짐승의 울음소리마져 들려 용범을 긴장시켰다. 그렇게 가기를 몇 시간, 갑자기 앞이 환하게 트이면서 햇빛이 확 들어왔다.
오랫만에 보는 찬란한 햇빛은 용범의 눈을 부시게 했고 현기증을 일으켜 비틀거리게 했다.
싱그러운 바람이 확 풍겨왔고 향긋한 향기마져 코끝을 스쳤다. 용범은 눈을 부비며 앞을 바라 보았다.
눈 앞에는 별천지가 펼쳐져 있었다.
푸른 초원이 한 없이 이어져 있었고, 숲과 강물도 보였다.
여기 저기 보지못했던 기화요초가 만발해 있었고, 처음 듣는 새들의 지저귐 소리도 새로운 것이었다. 무릉도원처럼 아름다운 이 별천지를 넋을 읽고 바라보던 용범이었지만, 곱단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 수 없어 아름다운 풍경도 잠시 눈요기에 불과했고, 다시 자기의 할 일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가야 하지, 물어 볼 사람도 없지 않나.” 용범은 난감하여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무작정 앞으로 가고 싶었으나 바로 눈 앞에는 시퍼런 강물이 흐르고 있어 건너갈 수가 없었다.
언뜻 보기에도 물살이 사납고 깊고 넓어 도저히 헤엄쳐 건너가기 힘든 강이었다. 초조한 용범이 강가를 이리저리 서성이고 있는데, 강 건너에서 쪽배 하나가 이쪽으로 건너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쪽배에는 젊은 청년이 노를 젓고 있었는데, 사공은 용범을 보자 배를 그 앞에 멈추면서 말을 걸었다. “어디로 가는 손님이시오.” “예, 나는 양산지마을에 사는 사람인데 괴물을 쫓아 여기까지 왔으나, 강을 건널 배가 없어 이렇게 난감하게 서 있다오.” “괴물이라, 그래 그 괴물이 사는 곳을 알고 있소?” “모르지요.
굴 속에 살고 있는 줄 알았더니 굴을 지나고나니 이처럼 처음보는 세상이 있구려.” “그 괴물이 사는 곳을 내가 알고 있지요.” “그래요? 그게 어딥니까?” “이 강을 건너가면 큰 길이 나 있는데, 그 길은 꽃으로 장식된 길이라오.
그 길을 끝까지 가면 궁궐같은 집이 나올 것이요. 바로 그 집이 괴물의 집이라오.” “그렇습니까? 고맙습니다. 그런데 물이 깊어 건너갈 수가 없으니 그 배를 타고 갈 수는 없을는지요?” “좋습니다.
내가 강 건너까지 모셔다 드릴터이니 타시지요.” 용범은 뜻밖의 사람을 만나 쉽게 강을 건널 수 있게 된 것이 기뻐서 하늘이 자기를 돕는 것이라 생각하며 배에 올랐다. 강물은 잔잔했으나 강 중간쯤 이르니 물살이 거세지고 바람까지 불고 있었다.
하지만 용범은 지금까지 쉬지 않고 산에 오르고, 호랑이와도 싸우느라 지쳐 있었다.
그는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배 고물에 누워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배가 갑자기 요동했다.
파도가 뱃전에 부딪쳤고 그럴 때마다 물보라는 배 위로 튀어 올라와 갑판을 흥건히 적시곤 했다.
용범은 위험을 느꼈다.
배가 전복되기 전에 탈출할 생각을 했으나, 곧 물살이 너무 세어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았다. 용범은 사공을 보았다 그러나 사공은 조금도 당황하거나 초조한 빛도 없이 태연히 앉아서 흔들리는 배를 마치 파도 타기라도 하듯 즐기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사공의 태도가 용범은 얄미웠다. “여보시오. 배가 전복하려 하는데 사공이 그렇게 태연히 앉아 있으면 어쩌자는 거요?” 이 소리에 사공은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소리는 소름이 끼칠만큼 징그럽게 들렸다. “네 이놈, 내가 누군줄 아느냐? 나는 천년 묵은 여우다!” 이렇게 말한 사공이 물 속으로 뛰어드는가 했더니 그의 몸은 어느새 여우로 변해 있었다.
그와 동시에 배는 전복되고 말았다.
여우의 간괴에 말려든 것이었다. 파도에 밀린 용범이 기절한 상태에서 정신이 들어 눈을 떠 보니 강변에 누워 있었다.
죽지않고 살아난 것이었다.
그는 부시시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사납던 강물은 잔잔하고 평화로웠다.
햇살이 비친 물결은 눈부셨고 그 위로 나르는 물새의 노래 소리가 고왔다. “천년 묵은 여우라고 했지, 그렇다면 곱단을 납치한 괴물도 요사스런 그 여우가 틀림없어.
그러나 나는 여기서 물러서지 않는다.
내 사랑 곱단이를 찾을 것이다.” 용범은 강을 따라 올라갔다.
여우가 일러 준 큰 길이 나타날 때까지 위로 올라갔다.
얼마쯤 갔을까, 과연 숲 속으로 넓게 뚫린 길이 나타났다.
이 길을 따라가면 괴물이 살고 있는 집이 나타난다고 했다. 어째서 여우가 이 길을 쉽게 가르쳐 주었을까, 그것은 용범이 물속에서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고 계산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용범은 천우신조로 이렇게 살아났던 r것이다. 용범은 길을 따라 걸었다.
길가에는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운 열매가 많이 열려 있었다.
열매를 보자 시장끼가 밀려 들었다.
그는 손을 뻗어 열매를 땄다. “혹시 독이 든 것은 아닐까?” 그는 의심도 해 보았지만 워낙 배가 고픈 그에게 그런 생각은 뒷전으로 밀려갔다.
그 동안 그는 풀뿌리와 나무 열매로 연명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다행이도 그 열매에는 독이 없었다.
정신없이 열매를 따 먹은 용범은 밀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풀숲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는 몹시 지쳐 있었던 것이다.
하긴 용범이 양산마을을 떠나 이곳 이상한 동네로 오기까지 며칠이 걸렸는지 모른다.
해가 지고 낮과 밤이 뚜렷하지 않은 이곳에서는 시간의 개념마져 잊게 마련이었다. 얼마쯤 잤을까.
용범은 잠에서 깨어나 다시 걸었다.
길 양쪽의 나무숲에서 산새의 노래가 들려왔다.
그 산새소리 역시 용범으로서는 생소한 것이었다.
양산마을에서 듣던 그런 산새소리가 아니었다. 모두가 낯설고 모두가 생소하며 모두가 신비롭기만 한, 이 이상한 동네는 도대체 누가 사는 마을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 용범의 앞에 대궐같은 집이 나타났다.
그 집은 집이라기 보다 옛 동화 속에 나오는 궁궐같은 집이었다. 용범은 발을 멈추고 이 장엄한 대궐에 넋을 잃고 멍청히 서 있었다.
어쩌면 이집은 괴물이 살고 있는 집이 아니면 어느 신선이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 때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대문이 열리더니 몸집이 거대하고 키가 구척인 장수가 말을 타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 뒤로 수십명의 군졸이 따르는데 그 위용이 하늘을 찌를듯 하였고 용맹이 천하를 삼킬만 했다. 용범은 잽싸게 몸을 나무 뒤에 숨겼다.
그리고 이 뜻하지 않은 군병들의 출현에 가슴 조이며 그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이제부터 사냥을 나간다.
오늘은 인가에 내려가 많은 가축을 도륙하여 오도록 한다.” 말을 탄 장수의 위엄있는 소리에 졸병들은 머리를 숙여 그 명령에 따르겠다는 복종의 표시를 했다. 용범은 대장의 하는 말 가운데 인간마을에 내려간다는 대목에 서 번뜩 집히는 예감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곳은 괴물이 사는 집이 분명하다.
저 장수는 사람이 아닌 요괴가 분명하다.” 이렇게 생각하니 용범은 등골이 오싹했고 식은땀이 등에서 흘러 내렸다.
정신을 바싹 차려야지 잘못하다가는 큰 일을 만날 것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네 이년, 내가 사냥을 해 올 동안 잘 생각하기 바란다.
만일 이번에 돌아와서도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너도 굴 속에서 죽게 될것이다.” 누구에게 하는 소리인지 대장의 노기띤 고함소리에 용범은 정신이 번쩍 들어 그쪽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 거기 대문 뒷쪽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던 것이다.
용범이 찾아 헤맨 그 사랑의 얼굴이 고개를 숙인채 험상한 대장의 협박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용범은 가슴이 갈래갈래 찢어지고 있었다.
불같은 것이 가슴 한복판에서 목구멍으로 치솟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뛰어나가 저 요물을 단칼에 요절을 내고 곱단을 구하고 싶었으나 지금 섣불리 굴다가는 일을 그르칠 것이라는 생각에 흥분을 삭이고 있었다. “왜 대답이 없느냐?” 대장이 곱단을 향하여 다시 소리치자 곱단의 머리는 땅으로 더 향하고 있었다. “사흘이다.
사흘 동안 네가 맘 고쳐먹으면 호강을 하며 살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더 이상 봐 줄 수 없으니 그리 알아라.” 대장은 그런 말을 남기고 졸개들을 데리고 우루루 용범이 오던 길을 따라 나갔다.
그렇다면 저 요물이 곱단을 데려다가 욕정을 채우려 했으나 곱단이 그 동안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며, 이제 최후통첩으로 사흘 동안의 사냥에서 돌아와 결판을 내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용범은 어떤 안도의 숨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아직 곱단의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는 것과, 곱단이 죽기를 각오하고 요괴와 싸워왔다는 그 용기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터져나오는 긴 호흡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저 집안으로 들어가 곱단을 데리고 나오는가 하는 것이 지금 용범에게 큰 과제였다. 지금 집안에 곱단이 말고 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고 굳게 닫힌 문을 어떻게 열고 들어가느냐 하는 것도 커다란 문제였다. 집을 둘러싸고 있는 담은 아득히 높아 담을 뛰어 넘기도 불가능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용범은 우선 집안의 동정을 살피기로 하고 대문 앞으로 다가갔다. 용범은 대문 틈으로 안을 들여다 보았다.
집안은 사람의 자취는 하나도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넓은 뜰에는 갖가지 꽃나무와 정원수가 들어서 있었고, 알 수 없는 과일나무에는 탐스럽게 익은 과일들이 열려 있었다. 무릉도원이란 말은 들어보았지만, 지금 이 집안 정원이 그와 같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용범이 어떻게 하면 집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을까 궁리를 하며 대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잡아끄는 손길이 있었다.
소스라쳐 돌아다보니 한 군졸이 용범의 수상한 짓에 시비를 걸어왔다. “웬 놈이 남의 집을 엿보느냐?” 군졸은 용범의 대답도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이 어느새 칼을 뽑아 들고 용범의 목을 노렸다.
참으로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용범의 날랜 몸짓은 군졸의 칼을 피했다.
그리고는 그의 손에도 어느 틈엔가 칼이 들려져 있었다. “보아하니 네놈은 사람이 분명한데,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왔느냐?” 졸병은 식식거리며 용범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칼솜씨가 범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용범도 칼을 휘둘렀다. “쟁강, 쟁강” 조용하던 대문 앞이 칼소리로 소란해졌다.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 용범은 곱단을 찾기 위하여 피나는 무술을 연마하였다.
웬만한 무사가 당할 수 없는 무예를 닦은 용범이었기에 지금 이 이상한 탈을 쓴 졸병과도 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칼싸움은 몇시간을 두고 계속됐으나, 두 사람 모두 기진한 상태로 끝이 날 기미가 없었다. 그런데 용범이 점점 밀리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칼을 든 손은 땀이 배어 흐르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이래선 안된다고 생각하고 이를 악물며 힘을 내려 애썼지만 용범은 점점 눈앞이 캄캄하고 현기증을 느꼈다.
비실비실 뒤로 밀리던 용범은 `이제 그만이구나' 하며 병졸의 칼이 사정없이 내려쳐지는 환각을 느끼며 칼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건방진 놈, 감히 나에게 대들어.” 병졸의 눈에 갑자기 살기가 등등해지더니 용범을 향해 칼을 겨누었다. 용범은 체념했다.
그러나 분하고 억울했다.
여기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와 그를 구하려던 꿈이 산산히 부서지는 처참한 현실이 서글펐다.
그 보다도 조금전 곱단의 얼굴을 보지 않았던가, 수척하여 여위었던 그 얼굴, 괴물의 협박에 눈물 흘리던 사랑하는 사람을 목전에 두고 이렇게 죽어가다니 참으로 분했다. 용범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죽음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 때, 병졸을 향해 날아든 비수가 있었다. “내 칼을 받아라!” 날카로운 여자의 고함소리와 함께 날아든 비수는 병졸의 가슴을 파고 들었고 살기 등등하던 그는 쿵 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는 하얀 여우로 변하는 것이었다. 비수를 날린 사람은 곱단이었다.
안에 있던 곱단이 문밖이 소란하여 나와 보니 용범이 여우와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용범이 점점 밀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곱단은 정신없이 방으로 들어가 방에 있던 비수 한 자루를 들고 나와 여우를 향하여 힘껏 던졌던 것이다. 평소 칼이라고는 부엌일할 때 만져본 것이 고작이었지만 곱단은 온 힘을 다하여 칼을 던졌던 것이다.
그것은 곱단의 힘이라기 보다도 사랑의 힘이었다. “용범씨!” “곱단이!” 얼싸안은 그들은 언제까지나 그렇게 서 있었다.
그들의 만남은 꿈꾸듯 상상도 못할 커다란 사건이었다. 한참 후, 곱단이 말했다. “여기 이렇게 있을 수 없어요.
조금 있으면 다른 여우가 이 집을 감시하기 위하여 순찰을 돌 것입니다.
그놈에게 들키면 큰일납니다.
안으로 들어갑시다.” 그들은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하고 호화로웠다.
벽은 금으로 장식돼 있었고, 바닥은 붉은 양탄자를 깔았으며, 침구 역시 용범에게는 처음보는 보료였다. 용범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 방은 누구의 방이요?” “내가 이곳에 온 후 혼자 사용하던 방이예요.” 그러나 용범이 가장 궁금한 것은 곱단이 그 동안 어떻게 이곳까지 왔으며 어떻게 지냈는가 하는 것이었다. “내가 지금 가장 알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소?” “알고 있어요.
나에 대한 그동안의 행적?” “들려주시오.” 곱단은 지금까지 지내온 이야기를 소상히 들려 주었다. 곱단이 잡혀오던 그날따라 곱단은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결혼을 앞두고 흔히 겪는 쳐녀들의 심란한 마음 그것이었다. 밤이 이슥하도록 이리뒤척 저리뒤척 하며 공상에 젖어 있던 곱단은 이상한 인기척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인기척은 바로 눈앞의 방문 앞이었고, 언뜻 그림자가 문을 스치고 지나갔다.
불길한 생각에 곱단은 머리카락이 솟는 것 같았다. “누구요?” 그러나 대답 대신 문을 열고 들어선 시커먼 물체는 곱단을 번쩍 안아 큰 자루라 생각되는 곳에 담아 휭하니 대문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자루 속에 있던 곱단은 기절하였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알 수 없는 어떤 집에 와 있었고, 그의 앞에는 건장한 군복차림의 장군이 버티고 서 있었으며, 그를 옹위하는 수 십명의 병졸들이 늘어서 있었다. “하하하, 정신이 드는 모양이구나.
아무 걱정말고, 이 방에서 쉬고 있거라.
네게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이말을 남기고 그는 병졸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곱단은 정신을 차려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병졸이 날라온 이상한 죽을 몇 모금 마셨다. 그런데 하루쯤 지난 뒤였을까? 이곳에는 해가 뜨고 지는 법이 없어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었지만 짐작하여 하루쯤 지났을 때, 장군이 곱단의 방으로 들어서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잡아 온 처녀들 보다 네가 제일 예쁘구나.
내 마음에 쏙 들었으니 나와 결혼을 해야 한다.” 이 소리에 곱단은 눈 앞이 캄캄해졌다.
무슨 말로든지 변명을 해야겠다 싶어 자기는 이미 정혼한 남자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험상궂은 장군은 그것이 무슨 문제냐고 우겼다. “정혼한 남자가 있다구? 그야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너는 다시 인간세상에 나갈 수 없는 몸이야.
정혼한 남자두 이제는 영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제발 저를 양산마을에 데려다 주세요.” “이런 법이 어디 있냐구? 바로 여기 있지.
그러니 너는 모든 것을 단념하구 내 색시가 되는거야.” 이런 말을 남기고 장군은 밖으로 나갔다.
곱단은 이제 영 글렀구나 싶어 자살을 생각했다.
아무래도 자기는 이 소굴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곱단이 방 구석구석을 살펴보니 여러 개의 단검들이 걸려 있었다.
그 칼이 눈에 띄자 곱단은 자살의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칼을 들어 자결하려 하니 양산마을이 눈앞에 어리며 눈물이 앞을 가렸다.
혼자 계신 어머니, 그리고 용범이, 그들을 다시 보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은 참으로 억울했다. “행여 하늘이 도울지도 모른다.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을 때까지 기회를 엿보자.” 곱단은 요행을 바라며 죽음을 잠시 뒤로 미루었다.
얼마후 장군이 다시 들어와 자못 위엄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마음의 준비가 됐느냐?” “장군, 며칠만 참아 주십시오.
앞으로 열흘 있으면 저의 아버님 제사입니다.
혼자라도 아버님 제사를 모신 다음에 생각해 보겠습니다.” “열흘이라? 좋아, 내 그 때까지 참지.” “그런데 이곳은 해가 뜨고 지는 법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열흘을 헤일 수 있겠습니까?” “옳아, 그렇지.
이 마을에는 햇빛처럼 빛나는 광석이 산 허리에 박혀 있거든.
그래서 밤낮 환하게 밝은데, 밤이 되면 내 그 광 석을 가리어 줄테니, 너는 오늘부터 열흘이 되거든 내게 말해라.
그래야 제사상을 차리지 않겠느냐.” 이렇게 하여 곱단은 열흘이라는 유예기간을 가질 수 있었고, 만일 그 때까지도 탈출할 기회가 없으면 죽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 열흘이 바로 내일이며, 이제 죽음만이 남아 있는데, 용범이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장군이란 자는 누구요?” “천년 묵은 여우랍니다.” “여우?” “자기 입으로 자기의 정체를 밝혔는데, 도술이 어찌나 신통한지 아무도 당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놈을 어떻게 처치하지?”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오늘 밤, 여우는 아버님 제사일로 내 방에 들어올 것입니다.
내가 술을 많이 먹여 잠을 재울터이니 그 때 용범씨가 그놈의 목을 베십시요.” “그거 좋은 방법이구먼!” “그러나, 그 일에도 어려움은 있습니다.” “어째서?” “여우는 잠을 잘 때, 갑옷과 투구를 모두 입고 잠을 잔답니다.
그 갑옷은 어느 칼에도 뚫리지 않는 답니다.” “그럼, 목을 베면 되지 않소?” “바로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여우의 목은 황금 비늘로 싸여 있는데, 그 비늘을 베는 칼도 없다고 합니다.
다만, 여우가 잠을 자며 숨을 들이쉴 때는 비늘이 일어서고, 숨을 내쉴 때는 비늘이 목을 감싼다고 합니다.
바로 비늘이 일어설 때 용범씨가 칼을 들어 목을 베십시요.
그러나 만에하나 실수하는 날에는 우리가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용범은 다락에 숨어 여우를 기다리게 되었다. 얼마 후, 밖에서 큰 발소리가 들리더니 여우의 그 거구가 곱단의 방으로 들어 섰다.
곱단은 여우를 맞아 갖은 애교를 부려 여우의 마음을 산다음 여우에게 술을 권했다. “네가 마음을 고쳐 먹은 모양이구나.
그런데 어디서 사람 냄새가 나지?” “사람 냄새는 내게서 나는 것이지요.
이방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답니다.” 술에 취한 여우가 잠이들자, 곱단은 용범을 다락에서 나오게 했다. “실수하면 큰일 입니다.
비늘이 일어설 때 칼을 써야 합니다.
알았지요?” 그러면서 곱단은 부엌에 나가 아궁이에서 재를 한 소쿠리 담아왔다. “재는 왜?” “쓸데가 있습니다.” 용범은 칼을 잡고 기회를 엿보았다.
그 때 여우가 숨을 들이쉬자 비늘이 위로 올라갔다.
이 때다! 용범의 기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에잇!” 그와 동시에 용범의 칼은 여우의 목에 날아들었고, 여우의 목은 뎅그렁 잘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잘린 목은 천정으로 튀어 오르고, 몸은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치고 있었다. “네 이놈, 감히 내 목을 자르다니.
그냥 놔두지 않을테다.” 그러면서 천정에 있던 목이 날아와서 붙으려 했다.
그 때, 곱단이 부엌에서 가져온 재를 잘린 목에 뿌렸다.
그 순간 붙으려던 목은 몸에 붙지 못하고 나뒹굴고 말았다. “됐다!” 목과 몸이 붙지 못하고 죽어간 여우는 그 모습을 드러냈다.
용범과 곱단이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빨리 빠져 나갑시다.” 그들은 손을 잡고 허겁지겁 여우의 집을 나섰다.
그리고는 부지런히 걸었다.
얼마쯤 왔을까, 곱단이 발길을 멈추고 용범이에게 말했다. “할 일이 아직 남아 있는데 우리가 너무 서둘렀어요.” “남은 일이라니요?” “가 보시면 압니다.” 용범과 곱단은 오던 길을 되돌아 갔다.
두 사람이 찾아간 곳은 광석이 빛을 낸다는 산 중턱이었다.
곱단은 산 중턱의 큰 바위 앞에 멈춰 섰다. “여기는 왜 왔지요?” “이 바위를 굴려 내면 동굴이 있습니다.
그 안에는 여우가 잡아온 많은 처녀들이 있는데 그들을 구해야 합니다.” 처녀들이?” 용범은 바위 앞에 섰다.
그리고 돌을 굴려 동굴 입구를 열려다가 돌이 너무 크다는 것을 알았다. 여우는 여러 마을에서 데려온 처녀들을 모아놓고 그 중에서 자기의 색시감을 골랐으나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자 모두 이 동굴에 감금해 놓고 하루 한 번씩 주먹밥을 주면서 큰 돌로 입구를 막아 아무도 탈출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용범은 바위를 굴려내려고 떠밀어 보았지만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바위 밑 한 쪽을 파 봅시다.
그러면 바위가 기울어질 것입니다.
그 때 밀면 넘어지지 않을까요?” 용범은 칼 끝으로 바위 밑을 팠다.
그렇게 하기를 몇 시간, 기어이 바위는 한 쪽으로 쓰러졌고 굴 입구로 사람이 들어갈 수가 있게 되었다. 캄캄한 굴 속에서는 쳐녀들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자, 여러분, 빨리 나오십시요.” 그러나 굶주린 처녀들은 밖으로 나오자 비실비실 하며 힘이 없었다.
곱단은 집으로 달려가 먹다 남은 음식을 가져와 그들에게 먹였다. 처녀들 중에는 얼굴과 머리가 하얗게 되어버린 사람도 있어서 꼭 할머니처럼 늙어보이기도 했다. 기운을 차린 처녀들은 열심히 산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모두 자기들의 고향을 향하여 부지런히 걸었다. 그 뒤 용범과 곱단은 행복한 삶을 살았고, 양산마을에도 평화가 다시 찾아왔다고 한다.
부엉이가 알을 낳고 사는 곳은 주로 바위틈이나 깊은 굴이라 한다. 부엉이는 이런 곳에 요람을 만들고 살아가는, 주로 밤에만 활동하는 날짐승이다.
비라도 축축히 내리는 날 부엉이가 우는 소리를 들으면 어쩐지 을씨년스럽고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것은 누구나 가지는 감정일 것이다. 밤에만 활동하는 짐승이고 조금 무섭게 생긴 때문인지, 부엉이에 얽힌 이야기도 심심찮게 많다. 우리 고장에도 부엉이에 얽힌 전설이 몇가지 전해오는데, 원북 방갈리 민어도라는 섬에도 부엉이가 많이 살았던지 그 곳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가 있다. 민어도 뒷쪽 해안은 거의가 절벽같은 바위가 많은데 그 바위 틈에 부엉이가 집을 짓고 살았다 한다. 아주 오랜 옛날, 민어도에는 인가가 한 채 밖에 없었는데, 이 집에는 홀어머니를 모신 청년이 삽살이를 데리고 살았다 한다. 지금은 민어도에 민가가 한 채도 없다.
한 때는 10여 호가 살았었는데, 6.25 때 피해도 있었고 하여 민간인보호 차원에서 철수 시킨 때문이다. 이 설화는 효성이 지극한 청년의 이야기로부터 생겨난 이야기이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청년은 바닷가에 나가 고기도 낚고 해산물을 채취하여 육지로 나가 양식과 바꾸고, 생활필수품을 장만하며 어머니께 지극한 효성을 다했는데, 어느 해 어머니가 발병하여 위독하게 되었다. 가난한 청년은 어머니를 의원에게 보여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 의원을 모셔올 수가 없어 근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걱정만 하고 있을 수가 없어 청년은 멀리 태안에 용한 의원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가 사정을 하였다. 의원은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청년의 청이 하도 간절하고 또 그 효성에 감동이 되어 청년을 따라 나섰다. 그러나 의원은 환자를 진맥하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갸웃둥하며 입맛을 쩍쩍 다시는 품이 불치의 병임을 나타내 주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청년은 불길한 마음을 억누르며 의원에게 물었다. “늦었어, 어머니 병환은 치료 시기를 놓친거야.
내 힘으로는 자당의 병을 고칠 수가 없다네.” “하지만 죽을 병에도 살아날 약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한가지 귀중한 약이 있기는 있지.
그런데 그 약은 구하기가 힘들고, 약값이 너무 비싸서 우리같은 사람은 쳐다 볼 수도 없다네.” 그러면서 의원은 그 약값이 쌀 100석 값과 맞먹는 거금이며, 그것도 구하기 힘들어 자기가 아는 서울의 어느 약국에 부탁해야 하는데, 지금 당장 돈이 있어 약을 사러 간다해도 열흘은 걸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병은 열흘을 넘기기가 힘들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의원은 가고 말았다. 청년은 난감했다.
그리고 슬펐다.
돈이 없어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이 가슴아팠다.
쌀 100석 값만 있으면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을텐데, 청년에게는 당장 쌀 한말 값도 없었다. 청년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 동이 틀무렵 밖으로 나왔다.
바닷가에 일찍 나가 고기잡이를 하려는 것이었다. 청년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기르고 있던 삽살이가 반갑게 맞으며 낑낑대고 있었다.
그러면서 삽살이는 청년의 바지를 물고 자꾸 끄는 것이었다. 이 삽살이는 몇년전 청년이 갈머리 동네에 나갔다가 길거리에 병들어 쓰러져 있는 것을 집으로 안고 와서 정성을 들여 간호해 준 그 강아지였는데, 다행히 건강을 되찾아 지금은 큰 개가 되었고, 청년은 이 삽살이를 한식구처럼 기르고 있는 터였다. 강아지의 이상한 짓에 청년은 왜 그러는가 하고 강아지가 끄는대로 따라갔는데, 강아지는 뒷산 너머 절벽으로 주인을 인도하는 것이었다. “무슨 일로 나를 이곳까지 데리고 왔느냐?” 그러자 삽살이는 어느 바위틈 앞에서 멈춰서더니 바위틈을 향하여 컹컹하고 짓는 것이었다.
그러자 안에서 큰 부엉이 한쌍이 나오더니 저쪽 바위로 날아가 앉아 큰 눈으로 청년을 응시하고 있었다. 삽살이는 부엉이가 나온 바위틈으로 들어가더니 주인에게 들어오라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청년은 점점 알지 못할 궁금증이 일어났으나, 삽살이를 평소 아끼고 믿었기에 삽살이가 하는 대로 따라 들어갔다. 바위틈의 처음 입구는 아주 좁아서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수 밖에 없었으나 안으로 들어갈 수록 점점 넓어져 큰 방만한 넓이로 변했다. “이런 곳도 있었구나.
그런데, 삽살이가 왜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을까?” 청년이 의아해하고 있는데 삽살이가 다시 컹컹 짖으며 발로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청년이 쳐다보니 아! 그곳에는 찬란한 빛이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비치고 있었고, 삽살이는 그 앞으로 달려가 청년에게 오라고 꼬리를 흔들며 법석을 떨었다. 청년이 그 빛나는 곳으로 가보니 거기에는 금은 보화가 수북히 쌓여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찬란한 빛은 이 보석에서 새어나오는 것이었다. 청년은 이 기막힌 사실 앞에 그저 어안이 벙벙하여 꼼짝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번개처럼 떠오르는 생각은 이 보석만 있으면 어머니 병환을 고칠 수 있다는 희망과 고마운 생각 뿐이었다. “삽살아, 네가 나를 도와주었구나.
내가 지금 돈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네가 알았구나.” 청년은 삽살이를 끌어안고 한동안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그 보화를 옷을 벗어 담아가지고 굴 속에서 나왔다.
그러자 지금까지 바위에 앉아 있던 부엉이 한쌍이 다시 날아오더니 굴 속으로 들어갔고, 삽살이는 굴 속을 항하여 컹컹 짖으며 고맙다는 듯이 머리를 쪼아리고는 주인에게 가기를 재촉했다. 이 보물을 얻은 청년은 그 길로 태안 의원을 찾아간 것은 물론이고, 의원은 말 한필을 얻어 타고 서울로 달려가 그 귀한 약을 구해 가지고 와서 죽음 직전의 환자를 소생시켰다 한다. 후세 사람들은 삽살이가 은혜를 갚았다고 했다.
자기가 길거리에서 쓰러져 죽게 된 것을 청년이 구하여 준 이후 지금까지 한 식구처럼 살아오면서 청년의 모든 사정을 알게 되었고, 어머니의 약값이 없는 것을 알자 부엉이와 의논하여 부엉이로 하여금 서울의 부자집에서 금은 보화를 물어다가 놓게 했을 것이라고 믿었다. 사실 그랬다.
이는 사람들의 말대로 삽살이와 부엉이의 합작에 의하여 이루어진 눈물겨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인간과 동물의 순수한 사랑과 인간의 근본 도리인 효도의 가치를 일깨워 주고 있다.
불효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개만도 못하다고 하며, 배은망덕하는 사람을 가리켜 짐승만도 못하다고 한 말도 이래서 생겨난 말이 아닐까. 그 후로 사람들은 부엉이 굴을 찾으려고 해안의 절벽을 모두 뒤졌다는 얘기다.
부엉이 굴하나만 발견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부엉이 굴을 찾았지만, 한 사람도 금은보화가 가득한 부엉이 굴을 찾았다는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부엉이굴을 찾기에 혈안이 되었으며, 굴 속에 손을 넣었다가 뱀에 물리기도 하고, 부엉이의 날카로운 발톱에 손등을 찢기는 일도 있었다 한다. 뒷 이야기로 전해져오는 말은 그 청년은 어머니를 모시고 뭍으로 나와 남은 돈으로 농토를 준비하여 호의호식하며 살았고, 예쁜색시까지 얻어 자식을 낳고 다복하게 살았다는 것이다. 살삽이도 늙어 죽었는데 주인은 삽살이를 옛날 부엉이 굴 옆에 묻어주고 삽살이를 기리는 비석까지 세워주었다 한다.
모두 전설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의 민어도는 섬이 아니다. 태안화력발전소 건립으로 육지로 이어지는 큰 길이 생겼고, 아름다운 경관마져도 간데가 없다.
부엉이의 서식지도, 갈매기의 삶의 터전도 사라져 가고 있다. 이 곳 민어도 인근에는 지금 이원지구 간척사업이 막바지로 전개되고 있는데, 머지않아 많은 농경지가 새로 생겨 날 것이다.